원하는 미래를 위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재창조하는 능력은 호모 사피엔스만의 특성이다. 걱정되는 오늘 오후의 프리젠테이션이든, 10년 뒤의 내 모습이든,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걱정하고 기대한다. 걱정만 있고 기대가 없다면 삶은 곧 지칠 것이고, 기대만 있고 걱정이 없다면 삶은 공허해질 것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꽃들에게 희망을>처럼 교육 문제의 핵심을 쉽고 간단 명료하게 이야기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다들 위에 뭔가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위로, 위로만 올라가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많은 나라들이 선진국이라는 정상에 올라서려 애쓰지만, 선진국 사람들은 정상에서 내려오며 이렇게 말한다. "거긴 아무것도 없어"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으니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게 공부다. 어떤 부모도 공부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공부 외에 다른 대안이 없으니, 차선책으로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다음이라는 미래를 생각해야 삶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공부는 삶의 끝에 뭔가 있는지, 아무것도 없는지 알아보는 기나긴 과정이다. 공부를 하다 보면 왜 공부를 시작했는지는 잊어버리고 공부의 과정에 매몰되기 일쑤다.
초등학생의 목표는 좀 더 공부 잘하는 중학생이 되는 것이고, 중학생의 목표는 좀 더 공부 잘하는 고등학생이 되는 것이고, 고등학생의 목표는 좀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다. 대학생의 목표는 좀 더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이다. 유치원 아이부터 정년 퇴직자까지 진로 선택지는 진학, 취업, 창업 세가지 뿐이다. 진학은 취업과 창업을 미루는 선택이고, 창업이든 취업이든 공통점은 일을 하는 것이다. 초중고, 대학생의 미래는 일하는 사람이다. 공부를 해서 위로 위로 올라가면 산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에는 <천왕봉 해발 1915m>라는 글자 대신 <어서 오세요. 이제부터 일을 하시면 됩니다>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 넘게 일을 하기 위해 공부를 했지만, 막상 일을 하게 되면, 일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 배운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첫 난관은 취업 준비다. 일을 잘 할 수 있는 역량인 직무 역량을 말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일이 무엇인지 모르니 시작부터 막힌다. 운이 좋아 원하는 곳에 일을 하게 되면 본격적인 문제가 생긴다. 일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하게 되니, 시키는 일을 무조건 하는 상태가 된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시키는 일을 빨리 하는 능력이라는 망조가 들기 시작한다. 일의 기본을 모르는 건 신입사원이나 오랜 경력을 쌓은 부사장이나 똑같다. 경험이 있다고 일을 잘 알고, 일을 잘하는 건 아니다. 어떤 일인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1인 기업이나 한 국가의 대통령이나 똑같다. 내가 무조건 옳다고 여기며 일하는 사람은 망하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믿으며 일하는 사람은 흥한다.
한국의 교육은 공부를 잘할수록 내가 잘났다는 잘못된 신념을 심어주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일이라는 것은 의사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함께 일하는 사람, 문제와 연관된 다양한 정보와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분석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출발점이다. 입시 중심, 취업 중심의 교육을 통해, 공부 잘하고 스펙 높고, 근사한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잘 보는 학생과 청년들이 붕어빵 찍듯 양산되고 있지만, 정작 일을 잘하는 사람을 찾기는 정말 어렵다. 인재를 선발하는 과정도 문제지만, 일이 무엇인지 기본 개념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이 더 문제다.
공부를 하면서 장미빛 미래를 기대하는 것도 좋지만, 곧 일을 하게 될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일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학교에서도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줘야 한다. 학생 때는 공부만 열심히 하고, 일은 사회에 나가서 알아서 해라는 것은 교육의 무책임한 태도다. 이런 말을 하면 항상 걱정이 앞선다. NCS처럼 일에 대한 것들을 또 잔뜩 만들어 내어 주입식으로 외우는 방식의 교육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교육이 적어도 일하는 방식처럼만 이루어진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리라 본다.(일에 대한 개념이 없어 엉터리로 일하는 조직도 많다. 기업도 학교도 똑같이 일에 대해 알아야 한다.) 질문을 통해 문제를 도출하고,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다양한 의견들을 주고받는 과정. 딱 그 정도만 교육되면 좋겠다. 공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이런 공부를 하면 내 삶에 도움이 될까? 대학을 나오면 내 삶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으로 공부와 대학을 걱정했으면 좋겠다. 그런 걱정의 대안으로 공부의 자리 일부에 일의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인간은 일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 일에 대해 공부하고, 일의 과정을 배우는 교육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교실에서 무언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것을 글로 정리하고, 그것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이 많아지길 바란다(일의 기본 프로세스다.). 성적을 위해서도 아니고, 대학을 위해서도 아니고, 스펙을 위해서도 아니다. 앞으로 하게 될 일을 위해서, 그 일을 통해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나를 위해. 공부와 대학에 대한 기대를 줄이고, 걱정이 늘이면 좋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