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

by 피라



산토리니에 두 번 갔다. 여름에 한 번 갔고, 겨울에 한 번 갔다. 여름의 산토리니와 겨울의 산토리니는 극과 극이었다. 여름의 산토리니는 개미굴처럼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고, 겨울의 산토니리는 유령의 섬이었다. 산토리니는 여름이 성수기고, 겨울은 극비수기다.


여름의 산토리니는 식당, 카페, 온갖 샵들의 예쁜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끝없는 곳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석양과 바다를 바라보면 처음 산토리니를 찾은 건 여름이었고, 두 번째로 산토리니에 갔을 때는 겨울이었다. 첫 방문은 1998년이었고, 두 번째 방문은 2015년이었다. 98년에 5일을 머무는 동안 한국 사람들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을 정도로 국내에 산토리니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럽의 여행객들로 인산인해였다. 겨울의 산토리니는 관광객은 물론, 성수기에 머무는 현지인들도 섬을 떠나 상태여서 방학 때 텅텅 빈 학교를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겨울의 산토리니는 비수기라 샵과 카페는 물론 식당도 모조리 문을 닫은 상태여서 밥이라도 먹으려면 간혹 문을 연 식당을 찾아 한 참을 운전해야 했다. 사람들이 떠난 섬의 석양과 바다는 입 다물고 등돌린 느낌이었다.


처음 산토리니를 찾은 건 여름이었고, 두 번째는 겨울이었다. 여름은 1998년이었고, 겨울은 2015년이었다. 98년에는 산토리니가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머무는 동안 한국 사람들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지만, 유럽의 여행객들로 인산인해였다. 겨울의 산토리니는 관광객은 물론, 성수기에 머무는 현지인들도 섬을 떠나 상태여서 방학 때 텅텅 빈 학교를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한국 여행자를 몇 명 만났다.


겨울의 산토리니와 여름의 산토리니는 전혀 다른 곳이다. 겨울에 산토리니를 다녀온 사람은 겨울 풍경으로만 산토리니를 기억하고, 여름에 산토리니를 다녀온 사람은 여름의 풍경으로만 기억한다. 하나의 대상이지만,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건 산토리니뿐만 아니다. 사람, 책, 일도 산토리니와 같다. 타인은 물론 자신도 일면만 보고 판단한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 착각하기도 한다.


진로를 생각하고 직업을 선택하고, 일을 할 때, 하루하루 살아갈 때도 산토리니를 생각하면 좋겠다. 한 측면만 보고 전부라 여기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겨울이 좋은지 여름이 좋은지 다투기보다. 겨울 속에서 여름을 보고 여름 속에서 겨울을 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일로 치면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것이고, 일상으로 치면 풍성한 삶, 재미있는 삶을 사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산토리니를 그렸다. 여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니다. 계획없이 급하게만 그렸다. 덕분에 다음 그림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그림이다. 인생도 그림 같다. 계절이 마음에 안 든다며 투덜거리지 말자. 겨울 속에서 여름을 기다리고, 여름 속에서 겨울을 기다리지 말자. 계절에 상관없이 무엇이든 그려내는 사람이 되자. 펜을 들 힘만 있으면 된다. 발의 무딘 신경과 근육만으로 경탄스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다. 숨만 쉬면 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한 번 그린 그림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는 펜을 잡지 않는 삶을 살지 말자. 피카소를 만든 건 일상의 좌절 속에서 무수히 시도했던 스케치들이다.


피카소가 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싶은 마음과 그리는 행위, 이 두 가지만 갖추면 충분하다. 마음과 행위는 선후가 없다. 삶은 먼저랄 것 없이 마음과 행위가 서로 주고받으며 자라는 나무와 같다. 무엇이 먼저인지 다투며 삶을 보내지 말자. 둘 중 하나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멈춰 서지도 말자. 여행자가 되자. 걷지 않는 여행자는 없다. 또한, 여름 풍경을 그릴지, 겨울 풍경을 그릴지 너무 고민 말자.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무슨 계절인가에는 별 관심 없을테니. 여름을 그린다고 해서, 겨울을 그린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리는 행위와 그 속에 담긴 마음이 삶을 결정한다.


누구나 선을 그을 수 있다. 그 점에서 삶은 공평하다. 선을 어떻게 긋느냐가 그림을 결정한다.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을 대하는 태도다. 눈과 귀로 들어오는 정보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삶을 결정한다.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어떤 선을 긋는가와 같다. 오늘 하루는 어떤 선을 그을 것인가? 이 순간, 나는 세상에 어떤 선을 긋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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