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일을 못하는 사람이다.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은 일을 못하는 사람이다. 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것과 일을 잘하는 것은 별개다. 일이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1인 기업의 일이든, 프리랜서든 협업하지 않는 일은 없다.
일이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 지식, 기술을 통합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다. 일의 목표란 가치의 창출이다.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가치가 흘러 들어와야 한다. 일의 과정이란 의사소통의 과정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수집, 분석, 선택, 재구성함으로서 새로운 가치,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예컨대 5명의 구성원이 참여하는 일의 과정에서 모두가 똑같은 생각만 얘기한다면 한 사람이 문제를 풀어가는 것과 똑같다. 한 명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다섯 명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같다면 굳이 5명이 일할 필요가 없다.
단지 한 명의 생각을 그대로 실행만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기획부터 실행까지 모든 것을 오로지 계획만으로 완벽하게 할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기획단계에서도 다양한 생각이 필요하고, 실행단계에서도 다양한 생각이 필요하다. 특히 결과를 검증하고 피드백하는 단계에서도 더욱 다양한 생각이 필요하다. 일의 성과는 일의 목표에 맞는 얼마나 다양한 가치들이 적절히 일에 녹아들었는지로 판가름난다. 단순 제조업 또한 숙련이 필요하다. 숙련이란 똑같이 반복되는 공정 속에서도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공정상의 문제해결 능력 또한 다양한 생각에서 나온다.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성 기반으로 돌아간다.
무조건 다양성만 갖춘다고 일이 저절로 되지 않는다.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레고 조각을 바닥에 뿌려 놓는다고 멋진 완성품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흩어진 레고 조각처럼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조직 안팎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들을 일로 연결 지어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뭔가를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은 다른 말로는 경영이라고 한다. 아무리 경영을 잘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양성이라는 경영의 대상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과 다양성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니, 한 장의 사진이 떠오른다. 1998년 첫 배낭여행 시절 부다페스트 혹은 프라하에서 찍은 사진이다. 어쩌다 보니 6명이 일행이 되어 이틀 정도 함께 다녔다. 주황색 옷을 입은 키 큰 친구는 프랑스, 그 오른쪽 친구는 오스트리아, 그 오른쪽은 미국, 오른쪽에 앉은 친구는 스위스, 그 옆은 헝가리다. 초록색 옷에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은 28살의 나다. 여섯 국적을 가진 6명이 우연히 만나 함께 다니는 일행이 되었다며 우리들은 무척 즐거워했다. 사소한 대화 주제만 생겨도 국적과 문화가 다른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즐거워했다.
한 번은 6명이서 함께 돌아다니다가 점심 때가 되었다. 뭘 먹을 지 의논 중에 미국 친구가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자고 제안했다. 그때의 나머지 친구들의 똥 씹은 표정을 잊지 못한다. 전국 곳곳 여행을 다니면서 김밥 천국에서만 밥을 먹자는 말처럼 들렸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과도 함께 다닌다는 것이 우리의 다양성을 더 풍부하게 했고,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졌다.
3개월 넘게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힘든 여행이었지만 내 모든 여행을 통틀어 가장 즐겁고 가장 빛났던 시절이다. 빛났다고 표현하는 건 서로 다른 것을 조금이라도 발견하면 그게 뭐든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삶도 일도 다른 것 속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내 안의 다른 나를 통해, 내 밖의 다른 존재를 통해 다양한 의미를 발견하며 배우고 성장하는 일. 그게 인간이 일을 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행위를 통한 입금만이 일의 의미라 여기는 건 세상을 사막으로 만드는 생각이다. 일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일을 통해 삶이 의미 있게 바뀌려면 일이 세상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좀 더 의미 있게 바뀐다는 건 의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내가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건 그 자체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 인간이 의미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의미가 있다. 의미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80억 사람 개개인이 다르듯 각자의 의미를 찾으면 된다. 교육은 하나의 의미를 심어주는 과정이 아니라, 각자의 의미를 발견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각자가 발견한 다양한 의미들은 다양한 행위로 이어지고, 다양한 행위는 다양한 일, 다양한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하다면 둘 중 하나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거나, 하고 싶은 것이 없거나. 다양한 존재의 다양한 가치에 눈뜨게 되면 적어도 하고 싶은 것이 없어 고민하고 무기력하게 사는 일은 줄어들 것 같다. 다양성은 내가 인정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숲의 다양한 풀과 나무, 곤충들처럼 그냥 존재할 뿐이다. 숲에는 소나무만 있어야 한다고 우기는 어리석은 사람은 일을 잘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삶도 잘 살기 힘들다.
P.S : 사우스 다코다를 함께 여행했던 미국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팔짱을 끼는 버릇은 좋지 않다고. 자연스럽게 팔짱 낀 모습이 눈에 걸린다. 아직도 팔짱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