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비유를 좋아한다. 유치원, 초등학교 때부터 비유적 표현을 폭발적으로 배운다. 대표적인 건 별명이다. 꼴뚜기, 문어, 고양이, 좀비, 똥, 마녀, 돼지, 쥐, 쓰레기 등등의 다양한 단어들로 사람, 동물 혹은 특정 대상을 말하는 걸 방법을 배운다. 별명은 친구간의 사이를 좋게 만드는 접착제가 되기도 하지만, 사이를 갈라 놓기도 한다. 별명은 선의의 표현이 되기도 하고 악의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나쁜 별명과 좋은 별명을 가르는 것은 별명을 짓는 사람이나 별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아니다. 어떤 별명인지 결정짓는 것은 어느 한 쪽의 일방적 의도가 아니다. 부르는 사람과 불리는 사람의 실질적 상호작용이 좋은 별명과 그렇지 않은 별명을 만든다.
별명은 개별적이다. 집단적 별명도 있다. 인간 전체의 별명을 지으면 뭐라고 하면 좋을까?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암세포’가 떠오른다. 인간이 매년 수십억 다른 생명을 학대하고 착취하고 학살하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도구로 삼고 사기를 치고 괴롭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 지구라는 거대한 몸을 파괴하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 암세포의 속성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더 건강하고, 더 성장하며, 더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어떤 생명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자기 보존과 종족 번식의 욕망은 생명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더 정확히 말하면 욕망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그런 욕망을 현실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암세포다.
암세포는 나쁜 세포가 아니다. 암세포가 되어보지 않고서, 암세포의 입장에서 깊은 사유를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암세포는 나쁘다. 죽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태도는 정치판에서 빨간색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 파란색은 모두 사라져야 한다는 신념과 비슷할 뿐이다. 일반 세포와 암세포의 속성 차이는 딱 한 가지다. 죽고 싶지 않은 욕망을 진짜로 실현하는 끝없는 “자기 증식”이다. 그것뿐이다. 때가 되면 사라지고, 때가 되면 죽는다면 그건 암세포가 아니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세포는 모두 때가 되면 죽어 사라진다. 뇌와 같은 신경세포는 예외라는 학설도 있지만, 위장, 간, 손톱, 피부, 눈, 백혈구, 적혈구 등 신체를 이루는 모든 세포는 100일 전후의 주기로 새 것으로 대체된다. 대체로 100일 전후의 사이클이다. 인간은 죽기 때문에 살 수 있다. 몸을 이루는 세포는 죽어 사라지기 때문에 자라고 유지할 수 있다.
세포와 인간의 차이는 교육이다. 새로운 세포가 발생하면 기존의 세포(어미 세포)가 아기 세포를 키우며 교육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 세포를 돌보며 인간의 몸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학교와 학원을 보내고, 공부를 하라고 다그치며 하나하나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새로 태어난 세포는 기존의 세포처럼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간혹 돌연변이 세포가 태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세포는 태어나자마자 일어서서 걷고 뛰는 아기 말처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세포의 세계에서는 새 세포가 태어나면 기존이 세포는 사라진다. 기성 세대의 역할이 없다.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다음 세대의 삶에 책임지고 관여하고 통제한다. 다음 세대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경쟁하고 싸운다. 부모 자식간의 갈등이나 세대 갈등과 같은 것이다. 때로는 서로 죽이기도 한다. 관리, 통제, 폭력, 살인의 근본 원인은 ‘자기 증식’이다. 세포는 아기 세포가 태어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을 이룬 것이지만, 인간은 의식이 살아 있는 한 타인을 ‘자기화’하려고 한다. 그것이 인간 사회의 자기 증식이다.
암세포의 속성은 죽지 않으려는 욕망으로 인한 끝없는 ‘자기증식’이다. 인간이 정상적인 몸을 이루는 이유는 기존의 세포는 죽어 사라지고, 새로운 세포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반복의 과정이다. 살아 있는 동안 역할을 하고, 때가 되면 죽어 사라지지 않으면 인간은 괴물이 된다. 인간뿐 아니다. 모든 생명은 그렇다. 인간은 조금 다르다. 빨리 성장하고 싶고, 빨리 성공하고 싶고, 빨리 인정받고 싶고, 젊어지고 싶고, 죽지 않고 싶다. 개미나 토끼도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생명들과 인간의 차이는 바로 실현이다. 인간은 3점점 젊어지고, 점점 오래 살고, 점점 죽지 않으려 하는 욕망을 점점 실현해 나간다. 죽지 않으려고 하는 끝없는 ‘자기증식’의 실현이 인간의 특징이며 이것이 바로 암세포와 정상 세포의 차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더 암세포의 속성과 점점 더 닮아 가는 길인지, 때가 되면 타인에게 역할을 맡기고 사라지는 반생명적인 것인지 헷갈린다.
하나는 알겠다. 암세포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않듯, 끝없는 자기증식과 죽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욕망에 충실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 길이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이다.
바람직한 것은 때가 되면 사라지는 것이다.
휴머니즘이란 인간다움이다.
이기적 자기증식이 지배하는 삶보다 이타적 자기희생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휴머니즘의 본질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