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을 좋아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평지에 살다 중학교 1학년때 산복도로로 이사갔다. 가쁜 숨을 내쉬며 산복도로를 꼭대기쯤에 있는 집으로 갈때 두 세번씩 중간에 쉬었다. 숨을 좀 돌리고 다시 오르막을 올라야했기 때문이다. 계단에 앉아 쉬기도 하고, 가만히 서서 쉬기도 했다. 쉴 때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보았다. 성냥갑같은 집들이 내려다보였고, 때때로 그 너머 산 위로 노을지는 풍경을 보곤 했다. 노을은 사춘기 시절 일상의 바탕화면이었다. 그때쯤일까? 노을을 좋아하게 된 것이.
내가 보았던 노을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 두 가지를 꼽으라면 첫번째는 북미 아리조나 나바호족 보호구역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에서 70대 노부부가 단 둘이 살던 흙으로 지은 집인 ‘호간’ 옆 먼지 쌓인 트레일러에서 보름을 머물며 매일 저녁 보았던 노을이다. 사방 팔방 10킬로 안의 생명체는 나바호전통가옥인 호간 주위에 개 2마리, 원주민 말만 하는 노부부, 그리고 나였다. 전기도 물도 없는 곳이었다. 4,5일에 한번씩 다운타운에 사는 친척이 트럭으로 노부부에게 물과 음식을 가져다 주었고, 그 물과 음식을 나도 조금 나눠 먹으며 지냈다. 2002년부터 북미인디언의 역사와 문화 그들의 철학에 푹 빠져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곳까지 흘러간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머물던 곳 앞 작은 관목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 그림자가 움직이는대로 의자를 조금씩 옮기며 노을이 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장엄한 노을을 보고 나면 이빨을 닦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지는 7시쯤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쯤 일어났다. 그때 본 노을은 노을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온 하늘, 온 세상이 붉게 물드는 장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 인상적인 것은 이스라엘 하이파 항구에서 아테네로 가는 배 갑판에서 72시간 동안 에게해로 떨어지는 태양이 만들어내는 노을을 본 것이다. 72시간 동안 노을이 몇 번 졌는지 모르겠다. 3번 정도 본 것 같다. 망망대해 수평선 위로 태양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는 다시 태양이 바다 위로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수평선 가까이 가서 오렌지빛으로 물들고 해가 완전히 가라앉고 바다와 하늘에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해 완전한 암흑이 될 때까지 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때 바라본 노을의 한 사이클은 3시간 정도였다. 무엇보다 해가 사라지고 난 뒤 세상이 점점 칠흙으로 바뀌는 두어시간은 애리조나에서 본 노을보다 더 인상적었다.
노을은 죽음과 탄생이다. 탄생을 품은 죽음이다. 그 전에는 환한 낮, 노을, 밤을 각각의 독립적 개념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낮과 밤, 일출과 일몰은 연속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관념이 아니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낮과 밤의 경계는 없었다. 낮이 밤이 되는 과정은 아이가 자라는 과정과 같다. 어른이 늙어가는 과정과 같다. 연속적이고 아주 미세한 차이가 일어나는 과정이라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여길 정도다. 그런데 가만히 시선을 고정하고 오래오래 관찰하면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낮이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때때로 노을을 본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어둠과 빛, 전성기와 쇠퇴기, 행복과 불행 같은 상반된 개념은 노을과 같은 것이라 여긴다. 그제 문득 하늘을 보았다. 노을이 손짓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