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웜

by 피라

밀웜. 2년전쯤에 처음 들은 단어다. 부산에서 인기있는 한 실내 동물원에 갔다. 바글바글 아이들은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5천원인가를 주고 먹이가 든 분홍색 바구니를 받았다. 시들기 시작한 채소와 배달음식 간장종지만한 플라스틱 용기가 들어 있었다. 하얀 플라스틱 뚜껑을 여니 빵빛깔 벌레들이 서로 엉켜 꼬물거렸다.사람들은 그 꼬물이를 밀웜이라 불렀다. 각 동물이 갇힌 우리에는 예쁘게 그린 밀웜 또는 당근 그림이 친절하게 붙어 있었다. 그림을 보고 어떤 동물에게는 채소를, 어떤 동물에게는 밀웜을 줬다. 지름 5센티미터의 하얀 플라스틱 용기를 조심스럽게 열고 결연한 마음으로 밀웜 한 마리씩 집게로 집었다. 선택된 밀웜을 미어켓 같은 동물에게 주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삼켜버렸다. 그때가 밀웜과의 첫 만남이었다. 커다란 눈과 입, 팔, 다리가 달려 있었다면 큰 결심이 필요했지 싶다. 밀웜은 최적화된 존재였다. 작고 단순하고 보잘것 없어서 1%의 죄책감도 없이 처음 본 동물의 먹이로 주기에 딱 맞았다. 밀웜은 그런 존재였다. 순도 100%의 무관심은 아니었다. 살짝 아주 살짝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생명이니까.


새해 첫날 무한공항 장례식장에 들린 다음 다음 날 광주의 한 실내동물원에 갔다. 그곳에도 밀웜이 있었다. 먹이 바구니를 두 개 샀다. 동물들을 더 만날수록 밀웜은 점점 줄어들었다. 밀웜이 귀엽다며 키우고 싶다고 아이가 말했다. 마지막 한 마리를 남겨두고 연약한 플라스틱 뚜껑을 덮었다. 그 다음날 차에 밀웜을 태우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두어시간쯤 지난 후에 뚜껑을 열어 밀웜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죽은 것이 분명했다. 아이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었다. 혹시나 싶어 밀웜을 오리털패딩 속에 따뜻하게 품었다. 30분쯤 지나 뚜껑을 열어보니 꿈틀거렸다. 죽었다 살아난 밀웜이 예수 같았다.


그 한 마리 밀웜을 돌본지 3달째다. 오트밀은 귀리다. 자동차의 시대가 열리기 전에는 말의 시대였다. 귀리는 말의 주식이었다. 밀웜이 가장 좋아한다는 귀리 가루를 굵직하게 빻았다. 직경 15센티의 플라스틱 통을 구해 3센티 두께로 귀리 가루를 깔았다. 채소와 과일을 잘게 잘라 정기적으로 귀리 가루 위에 놓는다. 수분섭취 때문이다. 집에 오면 밀웜이 아직 살아있는지부터 확인한다. 밀웜과 3개월째 동거하고 있다. 집을 10일 넘게 비워도 좁은 통속에혼자 꿋꿋하게 살아있는 모습이 놀랍다. 만약 이 밀웜이 죽는다면 실내동물원에서 동물의 입에 넣어진 밀웜의 죽음과는 무게가 다를 것 같다. 도살장에 끌려가다 탈출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부치와 선덴스라는 이름까지 얻고 자신들만의 보금자리에서 보살핌을 받다 행복하게 죽은 영국의 어느 돼지 두 마리와 삼겹살과 목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수많은 엄마 돼지들과 아기 돼지들 생명의 무게가 다른 것처럼. 밀웜이 어린왕자속 여우 같다. 밀웜을 돌보며 밀웜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밀웜이 있는 쪽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게 밀웜이란 발견이다. 발견은 새로움, 배움, 설렘, 호기심과 연결된다. 발견이란 상대의 입장, 나와 다른 것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다른 입장에 서게 되면 다른 것들이 보인다.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좋아하는 존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게 만드는 것처럼 쉬운 일이지만, 싫어하는 존재, 무관심한 존재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매일 밤 치맥을 흡입하며 살을 빼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오직 먹히기 위해 세상으로 나온 밀웜 입장에 서 보니 그 전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벌레 한 마리를 통해서도 삶의 방향이 5도 이상 틀어지는 걸 느낀다. 삶이 무료한 것은 발견이 없기 때문이다. 발견은 텅빈 삶을 호기심과 설렘으로 채운다. 시들한 내 삶을 바꾸는 것은 대단한 존재, 각광받는 존재가 아니다. 좋아하는 존재, 나를 인정하는 존재도 아니다. 시들한 삶을 바꾸는 존재는 무관심한 존재, 싫어하고 혐오하는 벌레같은 존재다. 자기중심적 입장, 익숙한 입장에서 찾는 것은 발견이 아니다. 선별이다. 한번도 서보지 않은 입장에서 한번도 생각지 못한 것을 통해야 진짜 발견이 가능하다. 그런 것이 진정한 발견이다. 그런 진짜 발견들로 시들한 삶이 피어나길 바란다. 관심없고 싫어하는 상대의 입장에서 일을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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