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과 성장의 비밀은 의사소통이다.
많은 학교에서 아직까지도 침묵을 가르치나 보다.
해야 할 것 같은 말만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는 애도 어른도 입을 닫는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학생들의 가장 적극적이고 강력한 의사표현은
“저 화장실 가도 되요?”다.
듣는 것과 동의는 다르다.
선생님이 허락해주지 않아도 된다.
의사를 밝히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중학생 대상 진로 교육을 하고 있다.
학생끼리 의사소통을 하는 수업으로 기획했다.
내가 맡은 6주 수업 중, 4주가 지났다.
말떼를 물가로 끌고가기가 힘들었다.
물을 억지로 먹이는 건 더더욱 의미없었다.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런 의사소통을 통해 직업의 본질을 스스로 깨달아가는 것이 수업의 목적인데, 의사소통이 활발하지 않았다.
수업 첫 시간, 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하는지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말하는 수업이란다.
교사들 세상의 절대적 존재, 진도 때문인가보다.
학교는 조선 말 쇄국정책을 고수하는 대원군의 나라같다.
전쟁을 해서라도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는 ‘교과과정과 진도’다.
창의적 수업, 자기주도 학습으로 신나는 교실을 만들고 싶어도 현실은 다르다.
교사들과 얘기하면 돌아오는 답은 똑같다.
“진도 때문에 안 됩니다.”
교과 내용과 진도의 세계에서 온 학생들과 매주 주말 만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의사도 없고, 방법도 몰라 그냥 멍하게 앉아 있기만 했다.
사육된 가축처럼 시키는 것만 수동적으로 해왔으니 당연한 결과인듯 싶다.
학생의 본분은 표현하며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의사소통 교육?
“참 좋지만 안 됩니다!”라고 말하던 교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직업적 자부심이 전해진다.
‘그 봐, 안 되지? 안 되잖아. 내가 뭐랬어?’
3주차까지 그랬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마다 대사를 준비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현실을 너무 몰랐어요. 이제 다시는 토의토론 수업이니, 자기주도 수업이니 그런 말을 쉽게 하지 않겠습니다. 고생 많으십니다.”
지난 주에 기적이 일어났다.
학생들이 바뀌었다.
바뀐 정도가 아니라, 천지개벽이었다.
2시간 수업 동안 쉬는 시간도 없이 학생들 스스로 열띤 의사소통을 했다.
10분 쉬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3주 동안 회색 빛 흐린 구름이 낀 교실에 무지개가 떴다.
한 명 한 명 모두 자신의 색깔을 뽐냈다.
수업 주제에 대해 열띠게 참여하고 끝없이 이야기했다.
그들은 이야기 속으로 나도 초대했다.
나도 그들 토론의 동료가 되어 함께 여행하는 호사를 누렸다.
그냥 놔두면 해질때까지 그들 스스로 이야기를 나눌 것 같았다.
나는 집에 가고 싶었다. 수업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수업을 정리하려고 그들 앞에 섰다.
학생들의 눈빛은 복음의 말씀을 기다리는 예수의 제자들 같았다.
온 감각을 집중해 나의 말을 들으려는 그 고맙고 귀한 순간.
나는 실수했다.
생명이 깃들지 않은 의미 없는 정형적 대사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생명이란 진정성이고, 진정성은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생각으로부터 비롯된다.
나는 실패했고, 학생들은 성공했다.
지난 주말 수업의 유일한 오점은 나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나즈막이 읖조린다.
’희망이 있어. 학교도, 교실도…‘
학생들이 극적으로 변한 이유를 잘 모른다.
하나는 알겠다.
그들이 나보다 낫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걸.
아니 나보다 낫다.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똑바로 앉아 잘 들어!“라는 태도를 가지지 않는다.
내가 똑바로 앉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면 그들이 먼저 입을 열지 모른다.
친구를 대하듯.
그리고 궁금함이 생긴다.
누구를 위한 교과과정과 진도인지 잘 모르겠다.
교육 개혁의 전제가 분명했으면 좋겠다.
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이었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는 미래가 아니라,
20대, 30대, 40대, 그 이후의 미래까지 고민하는 교육이길 바란다.
학생이 자라 어른이 되고 다음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생각하는 교육.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살 것인지.
그래서 어떤 세상을 꿈꾸며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교육.
그런 고민을 하지 않으면 학교의 미래는 없다.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재미있게 배우는 경험 제공이 학교의 역할이라면 유튜브가 가장 좋은 학교다.
학교는 이미 졌고, 다시는 이기지 못할 것이다.
경쟁의 궤도에서 벗어나야 학교의 미래가 보인다.
지식과 정보 제공이라는 경쟁에서 싸워 이기려는 학교는 모두 실패할 것이다.
미래의 학교는 지식과 정보를 머리에 입력하기 위해 가는 곳이 아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들으며 문제 해결의 경험을 하기 위해 가는 곳이 되어야 한다.
학교는 의사소통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때 번성했던 비디오테이프 만드는 공장의 운명이 될 것 같다.
자유란,
한 번 새겨진 영상만 반복해서 출력하는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다.
배움이 시작되는 마음이기도 하다.
각성과 성찰, 배움과 성장으로 얼굴이 환해지는 학생이 머무는 곳이 되길 바란다.
그런 곳을 학교라 부르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