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 근육

by 피라

서울대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취업을 하려는 학생들을 만나면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아래 두 가지를 알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외출을 하려면 신발을 신어야 하듯, 취업 준비를 하려면 먼저 꼭 알아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알고 있으면 그 다음을 말하면 되고, 모르고 있으면 알려주어야 한다. 아는지 모르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한다.


1. 채용이 무엇인가?


2. 일이 무엇인가?


채용에 대한 이해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기업이 사람을 뽑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예전에는 '기업에 도움이 되니까..', '돈을 벌려고...'와 같은 취업준비와 상관없는 대답을 하기만 했지만, 요즘은 10명 중에 1명 꼴은 정답을 말한다. 변치않는 하나의 정답이 있는 질문은 거의 없다. 상황과 조건에 솔루션이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이 사람을 뽑는 이유는 변치 않는다. 채용을 하는 이유는 '일을 시키기 위해서'다. 여기 10명의 지원자가 있고 한 명을 뽑는다면 누구를 뽑을까? 10명 중에 가장 일을 잘할 것 같은 지원자를 뽑는다. 일을 잘하는 지원자가 아니다. 아직 일을 시켜보지 않았기 때문에 채용 과정을 통해 일을 잘할 것 같은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그게 채용 과정이다. 채용은 일을 잘할 것 같은 지원자를 가려내는 과정이다.


입사지원해서 합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입사 지원이란 '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과정이다. 자기소개서, 필기시험, 인적성 검사, 면접 등을 통해서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잘하면 합격이다. 매우 간단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20년 넘게 공부했지만 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다. 일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나가는 문을 찾지 못한다. 문의 이름은 일이다.


일을 잘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학생들에게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대답을 못한다. 일이 무엇인지 물어볼 때 제대로 대답하는 학생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모두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다는 듯 멍한 눈빛이다. 취업준비는 2단계로 구성된다. '일은 무엇인가?',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을 잘하는 능력은 어떻게 길러지는가?'를 아는 것이 1단계다. 머리로 알고 난 뒤 그런 능력을 기르는 것이 2단계다. 1단계는 직무 역량의 이해, 2단계는 근육을 키우듯 직무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일이 무엇인지 모르면 맹목적 스펙쌓기만 하며, 뭐든 시키는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으로 자신의 소개하는 로봇이 되기 때문이다. 로봇과 경쟁하는 삶은 시작도 과정도 끝도 좋지 않다. 자신의 삶을 누군가의 수단이 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면 일의 이유와 원리를 알아야 한다.


일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욕망을 이해해야 한다. 일이란 여러 욕망과 욕망들이 부딪히며 만들어낸 간극이다. 바람이 있고 그 바람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과의 간극을 다루는 과정이 일이다. 일은 간극을 줄이는 과정이다. 간극을 줄이려면 목표를 낮추거나 현실을 높이면 된다. 사귀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전화번호도 모른다면 목표와 현실의 간극 때문에 일이 생긴다.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것, 문자를 보내는 것, 거절 당했을 때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일이다. 직무 역량이란 욕망과 현실의 간극을 다루는 능력이다. 일에 대한 이해는 취업준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간극을 다루는 역량, 즉 일을 잘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지 못하면 스토커와 사랑을 구분 못하는 범죄가 된다.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을 잘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없다. 대부분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상태가 된다. 시키는 일을 하는 존재는 두 가지다. 노예와 로봇이다. 일이 무엇인지 알고 어떻게 일할 것인지를 아는 것은 노예 혹은 로봇과 같은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일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가져야 하며 그런 생각과 일의 상호작용으로 삶과 사회를 개선해야 한다. 이는 권리이자 의무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을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루 아침에 일 잘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교육과 일을 통해서 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다만 저마다 필요한 시간이 있고, 때가 있다. 현실에서 말하는 교육의 최종 목표가 좋은 대학이라면, 대학 이후는 좋은 직업이다. 좋은 직업이란 일을 통해 나와 세상간의 진심어린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 교육을 통해 훌륭한 철학자가 되는 것과 돈을 많이 버는 멋진 직업을 가지는 것은 서로 통한다. 일을 통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일과 멀어지고 일이 삶을 공격한다. 삶의 문제는 일의 문제다. 일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사람의 일이든, 일 속에는 철학, 경제, 정치, 과학, 사회학, 심리학, 문학, 수학 등 인간의 모든 지식이 꿈틀거린다.


다음주에 면접을 보는 취업준비생들을 만나서 급히 코칭을 하면 내 마음도 급해진다. 변화를 위해 서로가 만났지만, 촉박한 시간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때 아쉬움이 남는다. 취업준비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일에서의 문제 해결이란 시험처럼 정답 찍기가 아니다.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다른 의견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재구성해 나가며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좋은 방법을 찾는 일이다. 꼬리가 잘린 린 도마뱀이 스스로 꼬리를 만들어내듯 스스로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생각하기, 글쓰기, 말하기, 대화하기 등의 능력을 길러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역량'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지만 역량의 뜻을 제대로 알고, 역량을 기르기 위해 교육하는 곳은 찾기 힘들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교육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취준생들이 자소서를 어떻게 써야 하고 면접을 어떻게 봐야 할 지 몰라 초조한 마음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시간이 없는 취준생들을 만날 때마다 의사가 된 기분이다. 어떤 학생에게는 '가망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해준다. 코칭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리 수술을 열심히 해도 어려울 때가 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합격하는 경우는 이미 합격할만한 지원자이기 때문이다. 평생 게임만 한 사람이 일주일 뒤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오랜 세월 동안 술과 담배, 마약에 찌들어 몸 상태가 엉망인 사람에게 높이 뛰기 하는 방법을 아무리 잘 가르쳐 주어도 소용없다. 높이 뛰는 방법을 완벽히 이해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삶이 무엇인지,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나와 세상을 연결지어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직무 역량을 기르는 방법이자 교육의 본질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의 코어를 단련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기업은 잔기술보다는 코어 근육이 좋은 지원자를 뽑는다. 신입일 때는 특히 그렇다. 그런 학생들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 자꾸만 조바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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