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빗방울이 떨어지고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내려온다. 지금까지 부모님, 교수님, 목사님, 경전, 정부, 광고가 삶의 방향을 제시했는데... 무지개 앞의 참새 떼가 일사불란하게 방향을 튼다. 바지 지퍼를 올리며 다짐한다. 이제부터는 내 삶에 주어진 것을 나 스스로 판단하리라. 상애상리(相愛相利), 서로 돕고 사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 했다. 이념, 제도, 관습, 애국, 순교 이런 것도 경계의 대상이다. 천박한 자기중심주의의 덫도 피해가야 한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뽀의 간이역 화단 옆 벤치에 앉았다. 기차가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 아무 기차나 탈 수 있었지만, 아무 기차도 타지 않을 수 있다. 화단의 코스모스처럼 벤치에 앉아 있는데, 역무원이 왜 기차를 타지 않느냐고 묻는다. 마음에 드는 기차가 오면 타겠다고 했다. 집을 나온 톨스토이가 역에 홀로 앉아 있다가 죽었다던가... 황혼속에 초승달이 나타났다. 역무원이 퇴근한다고 인사하고 갔다. 초승달이 진 하늘이 어둡다. 어둠 속에서 기차가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다... 여덟 시간을 벤치에 앉아 있었다. 삶이란 이것.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것,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이것이다.
- 새 / 김진묵다큐멘터리에세이
나는 그 버스를 타기 싫었다. 그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이 모두의 운명이라 했다. 밀리듯 버스를 탔다. 멀미가 났다. 어지러웠고 빨리 내리고 싶었다. 고 1때 자퇴를 한다며 한 학기 동안 싸웠다. 검정고시로 버스에서 1년이라도 일찍 내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달릴 때는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 뭐가 뭔지 분간할 수 없었다. 빠르게 달릴수록 멀리 있는 것을 보았다. 하늘과 구름처럼 멀리 있는 것은 버스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뚜렷히 볼 수 있었다. 때가 되자 창밖도 볼 수 없는 삶이 시작되었다. 직장 생활이다. 버스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앞만 보고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시간에 점점 익숙해졌다.
고등학교 때 자퇴를 못한 아쉬움 때문인지 첫 직장을 몇 년 다니다 퇴직했다. 여행을 떠났다. 비로소 그 지긋지긋한 버스를 내린 기분이 들었다. 2003년부터 여행기를 썼다. 그때는 쓰는 족족 공개했다. 좋다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고 웰빙라이프라는 잡지에 몇 번 연재되기도 했다.
멋진 여행기를 쓰고 싶었다. 여행기가 많지 않았던 시절부터 새로 나오는 여행기를 모니터링하며 내가 원하는 멋진 여행기를 쓰려고 고심했다. 장기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번에는 완성해야지라며 결심했고, 돌아올 때는 귀국해서 완성해야지라며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기를 써야겠다며 쓰지 못하는 것이 오랜 루틴이 되어버렸다.
공을 들인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좋은 걸 만들고 싶고, 더 좋은 걸 만들고 싶을수록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 세월 동안 다른 사람이 쓴 여행기에 대한 자기중심적 비판적 태도만 켜켜이 쌓였다.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도 그저그런 글이라 여길만큼이었다.
반에서 꼴찌하는 녀석이 서울대에 가려는 목표를 세우면 괴로워진다. 기적의 스토리를 만들수도 있겠지만 무척 어렵다. 내 꼴이 그랬다. 음악적 재능이 없어 음악평론을 하게 되었다는 김진묵작가의 말이 무척 공감되었다.
어제부터 한 여행 에세이를 읽고 있다. 빌 라이슨의 여행기보다 재미있다. 재미 속에 묵직하고 깊은 메시지들이 담겼다. 글에 담긴 뜻이 1이라면 행간에 담긴 뜻은 9다. 곁에 두고 오래오래 읽고 싶다. 내가 쓰고 싶었던 여행기보다 몇 배 멋진 여행기다. 여태 찾지 못했던 여행기의 롤모델이다. 여행기에 대한 헛된 오랜 꿈이 사라졌다.
나는 쫓기기만 했다. 더 빨리 더 잘 달리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평생 쫓기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공부를 더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고, 더 잘 일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고, 더 좋고 근사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쫓기고, 더 멋진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쫓겼다.
기어코 100억을 모으겠다는 마음과 기어코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겠다는 마음은 똑같다. 대기업에 취업하고 말겠다는 마음과 그 직장을 그만두는 마음은 똑같다. 삶의 형식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고 착각했다. 미루고 미루다 대청소를 하고 나면 깔끔한 기분이 드는 건 잠시다. 시간이 지나면 집은 또 지저분해진다. 정갈한 삶이란 청소를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여기지 않는 삶이다. 욕망의 충족이 미래에 머물러 있으면 현실은 고단하고 지저분해진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물건을 하나 둘 사기 시작했는데, 쇼핑이 삶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고, 쇼핑이 지속되지 않은 삶을 두려워한다.
당분간은 이렇게 살고 때가 되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지라는 생각 때문에 세상은 점점 어지러워진다.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도 밥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는 강한 정신력이 부족한 탓이다. 일단 대학을 가고 난 뒤에 원하는 것을 해야지, 일단 악착같이 돈을 번 다음에 타인을 위해 살아야지, 일단 기본적인 것은 좀 이루고 난 뒤에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해야지라는 마음이 나와 세상을 망친다. 한 번 빠지면 여간해서는 헤어나올 수 없다는 상업주의적 자기개발의 서사가 탄생한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난 모른다. 모른다고 또 쫓기듯 조바심을 가질 필요없다. 쫓기는 마음이 든다면 원하지 않은 버스를 탄 것이다. 혹은 버스 번호를 잘못 보았던지. 학교는 우리에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했다. 일하는 법도 가르쳐주지 못했다. 그들도 몰랐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이 알아야 할 사람에게 다그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허나 다행이다. 모르는 것은 살아야 할 이유이니까. 스스로 알아가는 것만큼 큰 재미는 없으니까.
88살 되던 해에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던 아버지도 평생을 쫓기듯 살았다. 70살이 넘어서 비로소 쫓기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늙은이가 된 아버지는 따뜻한 햇볕을 쬐며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다. 젓가락도 만들고 안마봉도 만들었다.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팔뚝만한 나무를 사포로 갈고 갈아 젓가락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렇게 만든 젓가락과 안마봉 같은 걸 선물했다. 정성스럽게 만든 걸 누군가에게 줄 때 볼그스레 피어났던 자랑스럽고 행복한 아버지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그 모습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위대한 유산이다.
나는 안다. 그때가 아버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걸. 정성을 들여 타인의 삶에 도움될 무언가를 하는 것. 그것처럼 인간 삶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