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수능이라는 말을 들었다. 요즘 문제는 어떤지 문득 궁금해졌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2022년 국어영역 문제를 출력해 80분 시간에 맞춰 풀어보았다. 학창 시절 국어는 공부하지 않아도 거의 만점이 나왔으니 수능도 거의 다 맞출 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원점수 71점, 3등급 수준이었다. 예전보다 문제의 수준이 높았고 재미있었다. 다음에는 80점을 넘기지 싶다. 조만간 2021학년도와 2023학년도 문제를 풀어봐야겠다.
운전면허 시험 이후 시험을 친 기억이 없다. 시험치면서 오래 동안 잊혀졌던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젊은 시절 인간 병기였던 퇴역 군인이 수십년만에 총을 들고 전쟁터에 서면 이런 기분이 들까?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내 삶은 망한다는 절박함, 긴장감, 초조함이 뒤섞인 마음으로 6대 9로 뒤진 야구 경기에서 9회말 투아웃 만루 상황에 타석에 들어선듯한 익숙한 기분이었다. 분비된 아드레날린이 혈관벽과 마찰하는 걸 느꼈다. 한 때 문제 푸는 기계의 삶을 살았던 때 내 삶을 지배했던 기분이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 그럴 것이다. 지금도 가끔 그런 꿈을 꾼다. 시험을 치고 있고, 종료시간은 다 되었고, 문제를 다 풀지 못해서 하늘이 무너진 듯한 기분이 드는 꿈을. 넓은 의미의 트라우마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생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 한 번 시험을 잘 쳤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사회적 인정과 경제적 보상을 받는 사회가 과연 공정한 지 잘 모르겠다. 내 기준으로는 그런 사회는 극단적 불공정에 시달리는 사회다. 그럼에도 시험만이 이 사회의 공정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한 번의 시험이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다는 데 있다. 큰 정도가 아니라, 전부라 여긴다. 어떤 대학에 가느냐가 평생의 운명을 가르는 척도가 되는 사회, 대부분 그렇게 믿는 사회는 여러 의미에서 위험하다.
정치가 힘을 발휘해야 할 문제인데, 정치가 실종된 지 오래 되었다. 좋은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인데,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정치라고 착각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나도 한때 그랬다. 비판이 곧 대안이라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우리는 문제를 제기할테니 너희들은 문제를 해결해라는 무책임한 생각을 했었다. 이제는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경우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려 한다. 문제를 낼 때는 답을 생각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문제 출제자처럼 살아야 한다. 수능 문제를 풀어 보고 틀린 답을 부끄러워하며 왜 틀렸는지,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배우듯 살아야겠다. 한 때의 시험이 평생을 결정하는 사회가 아니라, 평생을 시험치듯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아직도 시험 하나가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믿는 부모가 많은 걸 보니 삶의 수많은 과정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는 틀린 것 같다. 문제의 진원지이자 종착역인 교육 영역에서부터의 변화는 요원한다. 직업 영역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 허울만 좋은 스펙은 명함도 못내밀 정도의 오로지 현장 역량 중심의 무시무시하고 냉혹한 인사평가가 잘 정착되면 좋겠다. 이 역시 교육이 바뀌는 것만큼이나 어렵겠다. 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반발할테니. 공정한 사회를 막는 가장 큰 적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살며 더 이익을 보려는 우리 안의 소박한 꿈일지 모른다. 공정함은 사회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 양심의 문제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