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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뽑기

by 피라





작년 6월경부터 거의 손대지 않았던 리모델링을 6월부터 다시 시작했다. 작년에는 의무감으로 일했는데, 지금은 즐거워서 일한다. 허리, 팔꿈치, 무릎이 아파도 아랑곳하지 않고, 쭈그리고 숙이고 자르고 맞춘다. 200만원어치 산 대나무작업도 99%끝냈다. 강자갈 작업도 90%끝났다. 식물 편집 작업도 80%정도 진척되었다. 며칠 전 비오는 날, 쭈그리고 앉아 못을 뽑았다. 10센티미터 대못이다. 박힌지 최소 30년은 됨직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요리조리 돌리고 힘을 주다가 잠든 시냅스가 연결되었다. 못뽑기를 포기할려는 찰나 손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못뽑는 법을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잊혀진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못뽑기. 1991년에 시를 사랑하는 친구와 부여에 일하러 갔다. 공터 한가득 못이 박힌 목재가 제멋대로 무더기 무더기 쌓여 있었다. 녹슨 못, 녹슬기 시작한 못, 구부러진 못, 아무리 망치질해도 꿈쩍않는 못, 장도리로는 도저히 빠지 않는 못, 모두 대못이었다. 그때 일은 수백개의 투바이포, 투바이투에 박힌 못을 빼내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이틀 동안 못을 뽑았다. 아무리 뽑기 힘든 못도 10초 전후에 뽑는 기술을 터득했다. 핵심은 장도리의 양옆을 모서리를 지렛대로 이용해서 번갈아가며 지그재그로 짧게 짧게 빼내는 것이다. 못뽑는 기술이 30년만에 깨어났다.


대못을 뽑다보니 옛 사건이 떠오른다. 그 친구와 빌라 건설현장 노가다를 할 때다. 안전화가 아닌 시원찮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던 친구는 투아비포에 박힌 대못을 직통으로 밟아버렸다. 못이 운동와 밑창을 뚫고 발바닥을 뚫고 2~3센티는 족히 들어간 것 같았다. 운동화를 겨우 벗고 작업 반장에게 사고를 알렸다. 작업반장은 소독을 해야 한다며 성냥을 구해 황을 긁어내었다. 못에 찔려 생긴 작은 구멍에 황을 집어 넣고는 불을 붙였다. 겉피부와 발바닥 조직이 타들어갔다. 인간이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불소독 때문인 다행히 상처에 염증은 생기지 않았다. 대신 화상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친구의 이모가 부여에 살고 있었고 이모 남편의 소개로 못뽑기 노다가를 한 것이었다. 부여에 도착해 묻고 물어 해질녘에 이모집에 도착했다. 마당에는 개가 반갑게 꼬리를 쳤다. 한 상 가득 저녁을 먹었는데 고기가 없다며 미안해했다. 다음날 종일 못을 뽑고 저녁에 집으로 가니 밥상에는 고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고기국과 수육이 가득가득 들어찼다. 귀한 손님이 와서 키우던 개를 잡았다고 했다. 전날 나를 보고 꼬리치던 그 개를. 조선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내 나이 21살 때, 1991년의 일이다. 나는 동물은 물론 살아있는 것들은 거의 다 좋아한다. 쥐도 좋아한다. 개를 가장 사랑했으니 개고기를 먹는 것은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당황했다. 귀한 손님에게 최고의 대접을 하려는 마음을 알았기에 더욱 당황했다. 먹을 것인가 말 것인기를 고민했다. 독하게 마음 먹고 먹었다. 얼마나 먹었는지,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서가 아니라, 맛을 모르고 먹었기 때문에. 가장 먹기 싫은 것을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하는데 신경이 쏠렸기 때문이리라. 수많은 부족의 아메리카 원주민 말이 멸종되어 가듯 한 시대가 멸종되고 있다. 나는 아마도 언젠가 키우던 개를 잡아 밥상에 올린 고기를 먹은 경험을 가진 살아 있는 몇 인간들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낯선 사람의 방문에도 꼬리를 흔들던 그 개. 사람보는 눈이 있던 그 개의 털빛과 녹슨 대못의 색깔이 닮았다. 못뽑다가 별 기억이 다 떠오른다. 내가 싫어하는 것과 상대의 의도를 잘 구분하며 살아야 할텐데. 갈수록 세심함이 무뎌진다. 벼리는 방법은 기억을 떠올리며 발견의 생각을 하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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