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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칠

by 피라

절묘한 색을 만들어 보려고 페인트 조색제를 샀다. 빨간색, 노란색, 철황색, 초록색 등등을 샀다. 파랑, 노랑, 빨강 세 가지 색으로 잘 섞으면 될텐데, 굳이 초록, 브라운 계열 색을 사야했나 싶다. 색을 섞는 건 자신 있었지만, 페인트는 좀 다른 듯했다. 수채화와 유화의 차이일까? 원했던 있는 듯 없는 듯 오묘한 색이 잘 나오지 않았다. 벽을 칠하고 후회했다. 색 취향은 즉시적이니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것 같았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여전히 답답했다.


지난 1년 동안 거리를 지날때마다 외벽, 담장의 색을 보았다. 리모델링, 신축공사 현장을 지날때면 어떤 색을 선택할지 변화를 관찰했다. 벤치마킹해서 달집에 딱 맞는 색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찾지 못했다.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똑같은 건물, 완벽하게 똑같은 배경, 완벽하게 똑같은 조건은 없다. 하여, 마음에 드는 장소의 색을 그대로 구현한들 느낌이 달라진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그래도 새로운 색에 도전하든지, 그냥 그대로 두든지. 페인트칠을 이쯤 생각하니 뭔가 인생과 비슷해진다.


그냥 흰색을 칠하기로 했다. 이유는? 가장 많이 칠하는 색. 무난한 색. 그리고 한국의 색, K-color니까. 사 두었던 흰색 페인트가 있어서 폭염을 아래서 냅다 칠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쨍한 흰색이다. 조명으로 치면 형광등 느낌이다. 차갑고 건방져 보인다. 따뜻한 백열등 느낌이 살짝 있으면 좋겠다. 아이보리, 베이지 느낌. 또 고민을 했다. 다시 덧칠할까? 아이보리 느낌을 잘 만들어 분무기로 살짝 뿌릴까 싶다. 생각해 보면 외벽 색은 썩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계속 마음에 쓰인다. 이대로 가다간 색만 생각하다가 삶을 허비할 지도 모른다. 매일 반성하며 일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색일까? 겉에 칠하는 색은 사실 다 가짜다. 바위, 돌, 나무, 흙처럼 안에서 우러나오는 색이 진짜 색이다. 알지만 어떤 색을 칠할까 생각하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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