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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기

by 피라

넘어지기 시작한 건 지난 4월부터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서너번 정도 넘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이 넘어졌다. 7월 말에는 한 시간에 30번 넘게 넘어졌다. 넘어지지 않는 것을 배우려다 넘어지는 것을 배웠다. 이제 누구보다 잘 넘어진다. 넘어지는 것은 걷는 것보다 쉽다. 일어서는 것도 그렇다. 넘어지고 일어나는 동작은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우아하게 느껴질 정도다. 넘어졌다 일어서는 데 도가 트였다.


이건 기타와 비슷하다. 소시적에 기타를 배우다 절망했다. 오른손과 왼손이 제각각 컨트롤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습부족인지, 신경계의 문제인지 고민하다 포기했다. 스케이트의 코너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오른발을 왼발 너머로 넘겨서 두 발을 컨트롤을 해야 하는데, 넘기는 순간 두 발은 통제력을 잃었다. 스케이트 날이 컨트롤 되지 않으면 넘어진다. 코너는 기타와 같았다. 포기해야 하나 했다.


코치 선생님은 100번은 넘어져야 배운다 했다. 난 예외였다. 100번에 0을 하나 더 붙여야 될듯 했다. 무릎, 팔꿈치, 엉덩이 보호대를 찼는데도 엉덩이 대퇴골을 감싸는 피부가 터져 딱지가 생기기도 했다. 어떤 날은 얼음판에 부딪힌 무릎이 아파 내리막이 힘들었다. 코너웍 없이 스케이트를 타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스케이트 타는 건 너무 좋고, 코너를 배우는 건 너무 어려웠다.


저번주에 처음으로 다리를 넘기고도 넘어지지 않았다. 2~3초 정도 잠시 자세를 유지한 것뿐이지만, 내겐 유레카다. 어떤 사람들은 5분만에 해내는 것인데 나는 4개월 넘게 걸렸다. 기쁘다. 낮에도 밤에도 코너동작이 머리 속에서 맴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눈을 떴을 때도 코너연습을 생각하며 설렌다. 단단히 빠져버렸다. 나도 모르게. 5분만에 배운 사람은 다를테다. 수백번 넘어지며 4개월만에 깨친 탓일테다.


이제 시작이다. 다리를 넘겨서 잠시 넘어지지 않는 상태. 코너를 배우는 출발점에 섰다. 지금까지 500번 넘어졌다 치고, 앞으로 500번만 더 넘어지면 코너웍으로 활주할 수 있을까? ‘

넘어질 생각에 설레는 것‘, 특이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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