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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의 변주

by 피라

감옥에서도 자유로운 사람이 있고, 세계일주 여행을 하면서 노예라 여기는 사람도 있다. 33살에 퇴직했다. 회사생활이 답답했다. 출장도 많이 다녔지만 항상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여행을 실컷하고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철학과였다. 여행하며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고 잘했던 것이 두 가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야구는 실컷했으니 되었고, 그림은 언제든 그릴 수 있으니 되었다. 남은 것은 철학이었다. 고등학교때 철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철학과가 안 되면 사학과, 사학과가 안 되면 사회학과, 사회학과가 안되면 심리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모두 포기했다. 그렇게 난 상대생이 되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고 나 스스로 그렇게 결정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래야만 하는 것을 해야 한다 믿었던 시대였다. 철학책 실컷 읽으면 될 일인데, 굳이 대학원생이 된 건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대학 진학할때 내 뜻보다 타인의 뜻에 더 귀를 기울였던 당당하지 못했던 내게 미안했다. 대학원 진학은 사과 선물이었다.


남은 생은 하고 싶은 공부에 올인하고 싶었다. 학교 앞에 5평짜리 원룸을 구했다.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와서 책 보다 자는 삶이었다. 내가 지내는 원룸은 반지하였다. 방이 언덕에 파묻힌 구조인데, 들어가는 입구는 지상이고 방에 들어가면 지하였다. 2미터쯤 되는 높이에 언덕 방향으로 가로 30센티, 세로 20센티 정도의 작은 쪽창이 있었다. 그 창이 내가 살던 공간에서 유일하게 세상으로 연결되는 숨구멍이었다.


어느 날, 그 쪽창에서 소리가 났다. 같이 공부하는 J였다. 그는 박사과정, 나는 석사과정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정독실 공간도 마련해주며 대학원 생활과 공부를 세심하게 도와주었다. 무릎 아래까지 숙인 얼굴이 쪽창 너머 활기차게 말했다.


“어머니가 담은 열무김치가 진짜 맛있는데, 맛을 보라고요. 함께 먹고 힘내서 열심히 공부합시다!”


J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국 사회 어디든 경쟁이다. 대학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누가누가 더 지도교수에게 잘 보여 인정을 받을 것인지를 두고, 누가누가 더 똑똑한지를 다투는 듯 했다. 술자리의 토론의 목적은 배움이 아니라 내가 너보다 더 잘났다는 느낌을 증명하려는 듯했다. 같은 대학원생이든 오래전 작고한 위대한 철학자든 타인의 흠결을 찾아 비판하며 자신 존재를 증명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어디를 가든 내가 잘났으니 내가 더 인정받아야 한다는 인정투쟁의 전쟁터같았다. J는 달랐다. 누구든 도와주고 끌어주며 우리 함께 해보자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가끔 내뱉는 직설적이고 예리한 말들조차 온정어리게 들리는 건 그가 지닌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랑 때문이었다. 건네 받은 열무 김치를 오래오래 아껴 먹었다. 열무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맛이 더 좋아졌다. 22년전 그 열무김치가 담긴 락앤락 용기의 크기, 맛과 향을 잊을 수 없다. 흔해빠져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던 열무김치는 내게 무척이나 특별한 음식이 되어버렸다.


10월 연휴 첫날 J가 달집을 찾아왔다. 그의 신간 ‘역설의 변주’를 받았다. 다음 날부터 읽기 시작했다. 연휴 내내 읽었다. 조금씩 조금씩 아껴 읽었다. 빨리 읽기가 아까웠다. 밑줄도 많이 그었다. 무엇보다 읽다가 책을 놓고 생각에 잠기고, 메모도 했다. 문장의 밀도가 높았다. 책을 읽는 내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래 전, 그가 준 열무김치의 맛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열무김치로 상징되는 오랜 인연, 친분, 통하는 느낌같은 것과도 상관없다. 읽는 내내 나같은 사람을 위해 쓰여진 책이라 고마웠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과정으로서의 철학. 그런 철학에 관심이 많아 철학의 변경에서 길을 찾다가 이도저도 아닌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철학에 관심이 많지만 철학의 본질을 단순명료하게 말할 수 없는 사람. 관념적 철학이 아니라, 일상의 철학, 현실적 철학에 목마른 사람. 그런 나같은 사람을 위해 애정어린 눈빛으로 깊은 사유의 좌표를 알려주는 책이다. 읽는 내내 확인하고 발견하고 정리하며 배웠다. 몇년 동안 대학원에서 책과 교수들에게서 배웠던 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배움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었다. 본질을 관통한 역설적 메시지의 밀도가 높은 탓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입문서 혹은 요약서, 어떤 이들에게는 좀 어려운 책일수도 있겠지만, 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교과서같은 책이 될 것 같다. 나처럼. 한 학기 지나면 다시 보지 않는 교과서가 아니라, 두고두고 읽고 또 읽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도와주는 삶의 교과서.


작년부터인가? 재작년부터인가? 정말 좋은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을 앞에 두고 큰 절을 세 번 한다. 고마움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책을 쓰고 만들어 주어서, 그 책이 나에게까지 닿게 해주어서, 책을 읽고 감동할만큼의 삶이 아직 남아 있다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절이다. 절을 하게 만드는 원인은 영화의 극적인 결말같은 감동이다. 책을 덮고 몸과 마음에 휘몰아치는 감동과 배움이 몸을 일으켜세운다. ‘역설의 변주’는 타이밍을 놓쳤다. 한 번 더 읽을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SNS에서는 J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정진우 박사님? 정진우 교수님? 모르겠다. 그냥 우리끼리 부르는 호칭이 좋겠다.


“정진우 선생님, 이제야 대학원에서 철학공부를 하고 싶었던 어릴 적 바람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을 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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