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때 좌우명 같은 것이 있었을테지요. 숙제를 위한 좌우명, 젠체하기 위한 좌우명, 일상을 돌아보는 거울같은 좌우명, 인생을 바꾼 좌우명, 반대로 살게 된 좌우명. 선택지 없는 일상을 살아가던 군생활 시절, 니코스카잔차키스에 정신적으로 의지하며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강원도 양구 GOP 소대의 관물대 명판에 붙어 있던 좌우명은 <인생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였습니다. 죽음이 좌우명 속에 자리잡았던 20대였지만, 죽음이란 개념은 안전한 머리속 관념의 세계에 귀족처럼 우아하게 머물며 이따금 멋있게 보이려는 삶의 장식품 같았습니다.
딱 한 번. 살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에 당당히 맞섰던 적이 있습니다. 바쁘게 강의를 하러 다녔던 2008년쯤에 있었던 일입니다. 광주의 한 대학에서 모의 면접을 해달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일정을 보니 그날 오전은 대구에 강의가 있어서 광주에 제때 도착하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미안하지만 안 되겠다고 했지만, 학교에서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꼭 와 달라며 협박과 애원을 했습니다. 마음이 약해져서 그만 수락해버렸습니다. 학교에서는 조금 늦게 도착해도 된다 했지만, 그때는 신념의 시대였습니다. 강사는 어떤 경우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기필코 도착해야 한다는 믿음, 정해진 시간에 약속한 현장에 나타날 수 있는 역량은 강사의 모든 역량의 전제가 된다는 믿음 말이죠. 어떠한 물리적 거리의 문제도 속도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중앙분리대가 없는 옛날 국도 같은 88고속도로는 죽음의 고속도로라고 불렸습니다. 참혹한 사망 사고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제한속도 80km인 88고속도로에서 시속 140km 넘는 속도로 중앙선을 침범하며 추월했습니다. 대구에서 광주까지 정신없이 달리며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더욱 액셀을 밟았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사회적 가치, 소중한 생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만 저는 기껏 도착해서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른 체 초점 없는 눈만 깜빡거리는 학생들에게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 보세요.”라는 말을 위해 목숨을 바치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연구소를 열고 첫 특강을 했습니다. 장소는 경북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였습니다. 공기업으로 진로를 정한 전교생 60명(1.2,3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이었습니다. 연구소의 첫 특강이라 정말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많이 고민하고, 많이 준비했습니다. 이 말을 하려니, 저 말도 하고 싶고, 이 말은 꼭 해야 하고, 준비하면 할수록 꼭 해야 할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습니다. 강의준비를 하는 강사가 아니라, 고구마를 캐는 농부 같았습니다. 고구마 줄기를 따라가다가 매미 유충이라도 발견하면 잠시 곤충학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민하고 준비하면 할수록 더 중요한 메시지가 점층적으로 나타났고, 그때마다 얇은 노트북 속으로 꾸역꾸역 집어넣었습니다. 한 달 넘게 지속한 고민은 강의하는 날 아침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곧 출발해야 하는데, 잘해야겠다는 과욕으로 적정 분량보다 3배는 많아진 PPT를 열어 놓고 이 슬라이드를 넣을까 말까? 여기로 옮길까? 이렇게 보여줄까? 쳇바퀴 고민을 하며 출발 직전까지도 강의준비를 했습니다. 소요시간을 알아보니 2시간 6분이었고, 후딱 점심 먹을 시간을 고려해 2시간 30분 전에 출발했습니다. 운전하면서도 계속 강의준비를 했습니다. 각 내용이 유기적 연결이 되도록 순서와 연결고리를 만들고, 할 말을 소리 내 되뇌어보며 흐름과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평일인데도 길이 막혔습니다. 부산을 빠져나올 때, 대구에서도 심하게 밀렸습니다. 도착예정시간을 보니, 자칫하면 지각할 상황이었습니다. 화장실에 가고 현금도 뽑기 위해 휴게실도 잠시 들러야 했습니다. 시간을 벌기 위해 구간 구간 시속 160km 넘게 질주했습니다. 오른 발바닥으로 액셀을 꾸욱 누를 때마다 오래전 88고속도로의 죽음의 질주가 떠올랐습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학교에 영원히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왜 이리 급하게 쫓기듯 달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니, 원인은 정보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를 그때마다 강의에 담으려고 했던 과욕의 태도, 정보를 목적에 맞게 현명하고 명쾌하게 다루며 그때그때 강의 내용에 넣을지 말지를 결정하며 선택과 배제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일단 넣고 보자는 우둔한 태도 때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정보과잉과 죽음이 모종의 연관 관계가 있는 듯했습니다. 선택을 미루고 선택지를 늘리며 쌓아두기만 한다면, 언젠가 그런 태도 때문에 인간의 삶이 한순간에 와장창 무너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8년에 그랬듯이, 지난주에도 약속된 시간에 무사히 도착했고, 유유하게 강의장을 떠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러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중 하나는 이런 질문입니다. 어렵게 어렵게(몇몇은 아무 생각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공기업이라는 진로를 겨우 선택한 학생들에게 공기업에 취업하면 겪게 될 현실적 문제(예컨대, 업무수행 중에 느낄 고민과 혼란, 업무성과와 임금 문제 등)에 관한 정보들을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것이 좋을지, 적당히 감추고 포장해서 말하는 것이 좋을지 헷갈렸습니다. 그동안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메시지 전달을 위한 토대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진로교육이라는 관점에서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팩트의 전달은 자칫 학생들의 좌절감과 무기력감을 키워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게 만들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예컨대, 학생들의 동일 계열 평균 공기업 취업률(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해당 학교의 경우 진로실현률은 약 1.4%로 추정되어 공기업 진로 희망자 60명 중에 1명 정도 취업할 것으로 예상), 최저임금을 주는 공기업이 생각보다 많은 점, 대졸이든 고졸이든 약 50% 정도가 월 100~200만원 사이의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는 통계 자료 등을 말해주었습니다. 암울한 정보를 알려준 목적은 사회적 통념, 외적인 조건에 자신의 진로를 맡기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며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태도의 중요성을 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의도와는 달리 ‘역시 헬조선구나!’라는 확증편향만 강화되거나, 결과에 상관없이 순수하게 시도하고 행동하는 귀한 열정의 싹을 잘라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정보의 시대입니다. 정보 때문에 삶이 곤란에 처하기도 하고,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정보가 없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 정보 때문에 삶의 에너지를 얻기도 합니다. 모든 정보를 다 접할 수도 없고, 모든 정보를 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선별의 기준과 다루는 방법이 중요해집니다. 다양한 방식, 다양한 목적으로 정보를 다루는 알고리즘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습니다. 진로교육의 여러 역할 중에서, 정보제공 측면에서만 본다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서 학생들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것, 왜곡 없는 현실 인식으로 정확히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정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성적 때문에 주류에서 밀려나 학습된 무기력함에 익숙한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암울한 현실을 말하는 것이 진로교육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공기업? 현실은 이래!! 잘 생각해!>라는 정보와 <공기업? 일단 열심히 해봐!! 도와줄게>라는 정보 사이에서 어떤 기준으로 어떤 정보를 선별해야 좋은 수업이 될 수 있을까요?
특성화고뿐만 아니라, 일반고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 앞에서 좌절할수밖에 없는 현실, 서울대생도 다른 취업준비생들과 똑같이 취업문제로 머리털이 빠지는 현실, 취업을 해도 끊임없이 넘고 넘어야 할 삶의 더 큰 문제들이 서로 다투며 번호표를 뽑아들고 “어서 오세요. 고객님!”하며 억지 눈웃음을 짓고 있지요. 그렇지 않아도 경쟁시스템에 영혼을 털려 가뜩이나 자괴감과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곧 너희들이 만나게 될 현실이라며 암울한 정보들을 여과없이 알려주는 것이 좋을까요?(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른들보다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보제공으로 인한 좌절감과 무기력감을 미리 걱정해 배제와 선택으로 동기부여 중심의 정제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좋을까요? <동기부여>와 <현실인지>라는 두 정보 사이에서 어떤 기준으로 정보를 선별해야 좋은 진로교육을 할 수 있을까요? 정보의 선택과 배제는 목적에 따라 달라질 듯 합니다. 진학과 취업이라는 당장의 목표를 넘어서 삶 전체를 관통하는 진로교육의 보편적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진로교육의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