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터졌던 1997년에 저는 대학 졸업을 한 한기 앞두고 있었습니다. 시절이 어수선해서 일단 휴학을 했습니다. 6개월 동안 돈을 벌어 나머지 6개월 동안 배낭여행을 가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998년 7월까지 돈을 조금 모았고 여행지를 선택했습니다. 크레타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때 좋아했던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 적힌 글을 직접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크레타 직항은 물론 없었고, 가까운 아테네는 항공료가 비쌌습니다. 1998년 여름에, 한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가장 싼 항공권은 인천에서 카이로로 들어갔다가 런던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티켓이었습니다. 지도를 펼쳐 보니 런던은 카이로에서 서북쪽에 있었고, 크레타는 그 방향에 있었습니다. “음…크레타는 카이로에서 런던 가는 길에 있군. 그럼 이 표를 사야지….”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단순하게 삶을 살았나 봅니다. 카이로에서 크레타로 가는 일을 등굣길에 학교 앞 편의점에 잠시 들리는 정도로 여겼으니까요. 몇 주 뒤에 카이로행 비행기를 탔고, 이집트에서 한 달, 예루살렘에서 3주를 보낸 다음 이스라엘 하이파 항구에서 크레타로 가는 배를 드디어 탔습니다. 갑판에서 식빵 한 봉지를 조금씩 나눠 먹으며 일몰과 일출을 몇 번씩 보았습니다. 배를 탄 지 72시간 뒤에 크레타 이라크리온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에서 머물 때 외국인 친구들로부터 요르단이 너무 좋다. 시리아가 너무 좋다. 터키도 꼭 가봐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만 해도 멋진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서쪽으로 가기로 한 사람이기 때문에 동쪽인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터키로 가는 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려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크레타에 가기 위해 여행을 했고, 그러기 위해 당연히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했습니다. 그건 사회로 나오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습니다. 크레타는 여행의 물리적 목적지자 정신적 목표였습니다. 크레타를 선택했으니, 크레타에 언제 어떻게 갈지만 생각했던 그때는 여행지에서 보고 들었던 모든 것은 크레타를 가는 동안 잠시 스치는 과정들에 불과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마음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피라미드도, 룩소르 신전도, 아라비안나이트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카이로 재래시장의 그 매력 넘치는 삶의 모습들도, 에메랄드 빛 알렉산드리아도, 사해를 바라보는 비극의 마사다 언덕도, 시나이반도 천막 속의 베두인 가족도, 스노클링의 천국인 다하브에서 보았던 월드컵 결승전도, 베들레헴 공터의 야외가축시장도,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 돌계단을 수백 번 걸어 다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학이라는 목표, 취업이라는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 기계적으로 등교일을 채우는 고3 학생 같았습니다.
최근 공기업 취업을 원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본능적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공기업이든 공무원이든 자신의 적성과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선택이라면 결과에 상관없이 지지해야겠지요. 남의 선택에 지지나 문제 제기의 마음이 생긴다면 그 자체가 오지랖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선택에 대해 조언을 해줘야 하는 것이 직업이라면 선택의 과정, 선택의 이유, 선택 이후에 생겨날 일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분석적, 비판적,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목표가 공기업이든, 대학원이든, 사기업이든, 창업이든 상관없이 선택의 이유와 동기가 무엇인지는 중요합니다. 그 결정을 얼마나 끌고 나갈 수 있는지를 점쳐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 선택이 현실이 되었을때 얼마나 만족할 것인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안정성이라는 모든 생명의 공통 조건 단 하나만으로 공무원이나 공기업을 선택한 이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주저주저합니다. 그들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 학생과 이야기 나누면서 가장 큰 고민은 그들의 선택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오래된 질문입니다. 특정 학교, 학과든, 특정 기업이든 진로를 이미 결정한 학생들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든지,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도움이 되는 삶의 본질적 의미 같은 걸 말하면 꼰대 취급받기 딱 좋죠. 공기업을 선택했지만, 회의감이 든다고 하면, 그 사이를 비집고 다른 대안들을 말할 수 있겠지만, 공기업을 선택했으니 도움을 달라는 학생들은 그들의 선택에 의문을 제기하는 말에 반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똑같이 안정성이라는 관념 하나만으로 공기업을 선택했더라도 개인적 친분 있는 자녀들에게는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컨설팅에서 만난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공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지 방법을 이야기해주는 이중스파이가 됩니다
크레타를 다녀온 지 23년이 흘렀습니다. 그때 여행을 생각하면 그리운 것은 크레타가 아닙니다. 그때 가보지 못한 시리아, 요르단과 같은 나라들입니다. 특히 다마스쿠스는 너무나도 가보고 싶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입니다. 만약 그때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갔더라면 그것 때문에 내 인생은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학생 때라 돈이 부족해 동쪽으로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돌아올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쓴 프로스트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생긴 착시일지도 모릅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공기업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학생들은 크레타를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여행을 떠난 젊은 날의 제 모습 같습니다. 목표를 정하고 나니, 목표가 아닌 것은 고려 사항도 관심 사항도 아닌 상태 말이지요. 목표의 역설이죠. 경험상 안정성이라는 이유로 공무원이나 공기업을 선택한 학생, 취업준비생들의 생각은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습니다. 굳건한 목표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놓치는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진로교육의 목적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진로는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스스로라는 것은 그리 단순한 개념이 아닙니다. 진로의 가장 큰 방해물은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크레타라는 목표가 있어서 여행을 용기 있게 떠나긴 했지만, 여행의 과정에서 다른 가능성을 일축해버린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공기업에 매몰되어 다른 선택은 생각하지 않는 학생들을 보면, 나 자신의 생각과 선택으로 인해 더 많은 기회를 줄이고 있는 건 아닌지 묻게 됩니다. 각종 적성검사의 결과로 자신을 쉽게 단정하는 태도, 나는 이거 싫어해. 나는 이거와 맞지 않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와 같은 일상의 스치는 생각들이 확증편향을 강화시켜 선택과 가능성을 줄이는 쪽으로 작용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감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로선택과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과 별개로 말이지요.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유>
크레타 이라크리온에 있는 카잔차키스의 무덤에 새겨진 묘비명입니다.
여행도 자유롭게 하고, 삶도 자유롭게 살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진로선택은 외부적 조건, 강요, 제약은 물론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즐겁게 생각하는 과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진로교육은 그 과정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움주는 일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