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주위에서 자주 목격을 하고 있다.
'딸을 어려워하는 아빠들을.'
그래서인지 몰라도 난 주위에서 이 얘기들을 자주 듣는 편이다.
'어쩜, 딸들이 아빠를 그렇게 잘 따르냐고.'
엄연히 말하자면, 잘 따르는 게 아니라,
'친한' 것이다.
물론, '아들'도 그렇지만, 난 '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었던 아빠 중에 하나다.
언제부터?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래서,
오래전부터 내가 해왔던 '행동'들을 지켜봤던 사람들은 지금 우리 부녀의 관계가 이렇게 가까운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친해질 수 있었는지를.
그저, 처음 보는 사람들만이 놀랄 뿐이다. 어떻게 저렇게 친할 수 있는지를.
딸들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다른 아빠들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고 한다.
그 전에는 다른 아빠들도 이 정도는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고, 옆에서 그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아빠가 전혀 다른 아빠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맞다. 앞서도 말했었지만,
난 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을 했었던 아빠였기에 그분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그렇게 '노력'을 했던 것일까?
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난, 어렸을 때부터 많이 목격해왔다.
'아빠'가 '딸'들이랑 얼마나 서먹한지를.
얼마나 친하지 않은지를.
얼마나 서로 할 말이 없는지를.
난 그 모습이 싫었다. 그런 상황이 싫었다.
나의 '아빠로서의 삶'이 그럴 거라니, '완전히' 싫었다.
그래서 나중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우연히 책을 읽다가 나의 고민을 해결해줄 만한 글을 하나 '발견'했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그동안 딸들이 왜 '무심한 척'을 하면서도, 아빠들을 그렇게나 생각하고 있는지 '100%'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딸들을 이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 청사진이 점점 그려져 가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내가 좀 더 '노력'을 하기로 했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이, 나보다 더 노력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 글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이 글 덕분에 나는 아직까지도,
'딸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아빠로서 성장'하고 있다.
딸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주 보게 된 남자,
딸이 태어나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고 있는 남자,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을 제일 많이 도와주고, 제일 많은 사랑을 주고 있는 남자,
그런 존재인 아빠는,
딸의 '첫사랑'일 수밖에 없다.
- 어느 작가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