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기 어린 젊음에 대한 입체적이고 쓰라린 통찰

<졸업>

by 피링스

뭐 이런 막장 드라마가 있나! 싶다가도 시대를 대변하는 통찰력이 묵직하고 여운은 쓰라리다. 30대가 넘어서야 처음 봤지만 20대에 봤다면 감상은 매우 달랐을 것이며, 50대엔 또 완전 다를 것으로 기대되는 작품이다. 그만큼 젊음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과 시대정신을 담은 영화다.

엘리트 코스로 반듯하게 자란 벤은 대학 졸업 후 벗어날 수 없는 감옥과 같은 부모와 상류층 사회에 질려있다. 대학은 졸업했어도 부모의 설계도는 졸업하지 못하는 학생일 뿐. 그때 이웃 로빈슨 부인은 그의 방황을 이용해 젊음이라는 욕망을 채운다. 마치 그런 일탈이 ‘진짜 젊음’인 것처럼 꼬드겨서. 벤은 또 어른에게 이용당하는 것도 모른 채, 그래서 젊음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스스로 주체성을 회복한 것 마냥 그의 젊음을 뿌듯해한다. 이따금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의심도 하지만, 이내 로빈슨 부인의 교활함에 벗어날 기회를 놓친다.

그러다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과의 우연힌 만남으로 진짜 젊음이, 그 혈기가 각성된다. 벤은 자신이 어떤 거대한 규칙에 의해 통제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일레인을 계기로 어른과 그들의 설계도를 벗어나고자 한다. 일레인도 벤과 비슷하게 자라온 화초이기에 둘은 그 각성에 불타오른다. 특히 자기 엄마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일레인은 강렬하게 벤을 원하는데, 그런 벤을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간의 어른들의 통제를 벗어나겠다는 상징적 선언이라는 대의가 있기에 일탈은 눈감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씁쓸한 건, 세상을 깨닫고 세상을 헤쳐나간다고 믿는 그들은 사실 벤과 일레인의 양쪽 부모님의 정략적 주선으로 만난 관계라는 점이다. 결국 놀아나고 있는 것. 둘은 마치 젊음의 주체성을 회복한 듯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방탕하게 굴지만 스스로 선택한 것 없는 무능한 젊음의 치기를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영화는 필연적으로 쓰라린 결말로 간다. 일레인의 부모가 결국은 망가져가는 벤 대신 잘 길들여진 좋은 신랑감을 데려와 일레인과 결혼 시키려는 그 순간, 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일레인과 벤은 식장을 탈출해 되찾은 자유와 젊음에 환호한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세상 밖을 스스로 나가본 적 없는 둘은 그들의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자신들이 생존 능력이 없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한다. 재력, 추진력, 꿈 그 어느 것도 없는 그저 보호자 없는 어린 아이. 그렇게 환희에 찬 표정은 돌처럼 굳어간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생각해보면,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수영장은 어른의 세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초반에 벤의 아빠는 싫다고 말하는 벤에게 벤에게 잠수복을 입히고 깊게 잠수하도록 한다. 벤은 무기력하게 물 안에 갇힌다. 철저한 새장 속의 새의 모습. 그러나 로빈슨 부인과의 일탈을 겪은 후, 벤은 고무보트에 누워 의기양양하게 하늘을 바라본다. 당당하게 머리 뒤에 받친 손, 선글라스, 로켓처럼 몸 한가운데 놓인 맥주캔 등 아주 기세 등등하다. 마치 물이란 새장을 벗어난 것처럼. 하지만 여전히 수영장 위에 누워있을 뿐이다. 세상을 제멋대로 하고 있다는 착각. 그러다 부인과의 관계에 의구심이 생기고 일레인이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다시 벤은 수영장에 엎드려 의기소침해지고 결국 물에 빠져 그 속으로 들어간다.

또 한 가지. 벤이 일레인과 불륜 때 자주 가던 호텔을 가던 장면을 생각해보면, 우선 젊은 두 명이 일탈을 선택하고 간다는 곳이 기껏해야 로빈슨 부인이 알려준 호텔이다. 그러다 보니 로빈슨 부인이 단골인 호텔의 수많은 직원들이 벤에게 웃으며 인사하는데, 그건 이용만 당하고 착각 속에 발버둥 치는 벤을 조롱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첫 번째 젊은이도 아니었겠지. 그들의 조롱의 표정은 너무적나라해서 보는 나조차도 어디 숨고 싶을 정도.

유명한 포스터의 장면 역시, 벤이 알 수 없는 억압을 벗어나고자 호텔방을 나갈 때 그를 속박하는 어른(로빈슨 부인)의 강제적 통제를 다리를 통해 보여준다.

이 영화는 60년대 젊은이들의 반항과 방황의 욕망을 그대로 받아들인 보여준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 속엔 철저하게 무책임하고 치기 어린 젊음을 숨겨두었다. 그러니 이 영화가 길들여진 젊음의 착각 어린 치기와 방황을 비판하거나 조롱한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젊음은 그렇게 발버둥 치며 언젠가 알을 깨고 나가는 것이기도 하니까. 온실 속 화초도 흔들리다보면 온실을 기어나가는 때가 있을 테니까. 젊음은 늘 쓰라리니까.

조지 버나드 쇼는 “youth is wasted on the young”이라고 했다. 젊은의 가치는 젊을 때 모르고, 젊을 땐 젊음을 제대로 쓸 수도 없다.

현실 앞에 정신적 미아가 된 두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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