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스완
매우 뜨겁고 씁쓸한 영화다. 영화를 지탱하는 축은 내면의 불안과 혼란이다. 니나의 백조와 흑조 두 인격의 싸움과도 같은 이 영화는, 확대해 보면 니나 내면의 두 명 외에도 토마스와 엄마, 릴리와 베스 모두가 니나의 외재화 된 인격과도 같다. 이 인격들은 니나가 결국 흑화되는 과정을 완성시는 데에 필요한 서브 아이덴티티이다. 베스는 그녀의 내적 두려움을, 토마스는 그녀의 이상적 욕망을, 엄마는 욕망을 통제하는 초자아를, 릴리는 행동으로 초자아를 물리치는 살아있는 욕망이다.
다만 흑조의 완성의 표면적 의미는 박수 받는 완벽함의 완성이지만, 최종 의미는 니나가 베스의 모습처럼 될까 두려워한 대로 무너짐과 버려짐이다. 베스의 물건을 버리고 그녀를 마음속에서 죽임으로써 흑조에 도달하며 해방된 듯 보였으나, 마지막 장면에서 토마스가 니나를 ‘My little princess’라도 부르는 것으로 보아, 니나도 베스와 같은 운명에 머물러버리는 느낌을 줘 씁쓸해진다.
수많은 자기의 모습(엄마, 베스, 백조니나, 릴리까지)들을 파괴해가며 남은 한쪽의 자아로 우뚝 서 가장 찬란해야 할 때, 결국은 그녀는 단지 발레단장이 원하던 성공의 한 조각 정도였던 게 아닐까 씁쓸하기도 했다. 영화 내내 그 고생을 해서 결국은 토마스가 시키는 대로, 바라던 대로 되어버린 결말의 허무함.
악마 같은 토마스가 마지막에 그놈의 마이 리틀 프린세스만 안 외쳤어도, 니나의 압도적인 광기와 실력에 토마스가 어안이 벙벙해지며 끝났더라면, 영화는 니나의 승리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내 마음속에는 토마스가 승리자이자 지배자라는 사실이 굳건하다. 토마스가 파티에서 베스의 은퇴를 대충 축하해버린 다음 니나의 탄생을 알렸듯, 언젠가 니나도 그렇게 교체될 뿐일테니.
그럼에도 만에 하나 토마스의 말에 반응한 것이 아니라 니나 혼자 자아도취되어 완벽함에 감탄하는 모습에서, 어쩌면 니나는 이젠 토마스는 안중에도 없는, 스스로 날개짓하여 날아갈 상태로 올라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도 든다. 그 상황에서 영화를 끝내버렸으니 감독은 참 용의주도하다. 이렇듯 비관적이고 암울한 느낌을 끝내 남겨둔 것이 감독의 뜻이 아닐까 싶고, 그 점에서 이 영화가 나는 더 맘에 든다. 광기로 완성되는 건 예술이지만, 그 예술은 많은 부분 착취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복합적이며 매력적이다.
씁쓸한 감상과는 별개로, 영화는 기괴함에 대한 극단적 클로즈업과 동반되는 세세한 사운드 묘사, 마음을 흔드는 핸드헬드, 색의 대비가 강렬한 분장 등 매체적 특성을 잘 활용해서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고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잡아두는 치밀한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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