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어떻게 한 가정이, 세대가, 빈곤한 계층이 무너져 가는지라는 무거운 주제를 너무나 일상적으로 다룬다. 심지어 영화 내내 웃고 떠드는 귀여운 꼬마들이 등장하고, 알록달록 예쁜 모텔과 하늘, 무지개로 가득 차있다. 음악조차 경쾌하다. 그러다 보니 영화가 끝난 후 느껴지는 비극의 구조가 머리와 마음에 퍼지기까지 꽤 걸린다. 쓱 지나가면서 보면 보이지 않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젠시와 무니가 디즈니랜드로 뛰어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디즈니랜드의 일상 소음이 나온다. 그러면서 더 이상 무니와 젠시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평범한 혹은 신나는 일상 속에 숨어있는 그들의 비극처럼. 살짝 눈을 돌리면 슬픔은 웃음 속에 숨는다, 이 영화처럼.
웃고 떠들고 천방지축인 주인공 무니의 일상은 행복해 보이고 갈등도 없어 보이지만, 그가 처한 구조적 상황을 봤을 때 무니의 미래는 우려스럽다. 하루 종일 엄마랑 같이 있어도 배우는 게 없다. 싸움이 나거나 불이나도 그저 구경거리로만 받아들이고, 무니가 잘못을 해도 혼내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 스스로 잘못된 범죄의 선택들을 이어나간다. 그저 살아가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그래서 안타깝다. 스크린 너머의 우리는 그걸 방치하며 봐야만 하니까. 심지어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거나 과자 사 먹을 용돈도 주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런 관객의 입장은 모텔 매니저인 바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가장 감정이입이 되는 건 바비다. 무니의 일탈을 귀엽게 눈 감아주거나, 잘못되면 화도 내었다가, 피치 못할 때에는 도움도 주는, 그런 온정이 있는 바비지만 결국 그도 방관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을 도와준다고 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바비의 안타까움이 관객의 안타까움으로 전염된다. 영화 후반부 모텔 앞에 날아온 학을 쫓아내며 “차 들어오잖아, 손님 받아야지. 악감정은 없어. 저쪽에 재밌는 일 있겠지. 좋은 하루 보내”라고 말하는 것은 무니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대한 좋은 비유다. 심지어 새가 다리를 하나 쭉 올리는데 무니도 바비 앞에서 동일한 자세를 취한다.
이렇게 방치되고 무관심한 세상 속에서 무니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어른들 싸움으로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게 되어도 내색 한 번 하지 않는다. 화내고 감정적인 어른들을 보며 자기는 어른들이 언제 울지 안다며 천연덕스럽게 말하기도 하고, 쓰러진 나무를 보면서 쓰려져도 다시 자라는 게 좋다며 어른 같은 말을 한다. 어지간히 힘든
상황들을 반복적으로 겪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침착함이다. 그러던 무니가 엄마를 떠나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자 무작정 달려간 친구에게 아무것도 설명은 못하겠다며 그저 펑펑 울어대는데, 영화의 모든 아픔과 슬픔은 바로 거기에 있다. 애써 괜찮아 보여도 속은 썩어있으니까.
영화가 예쁘고 아름다운 만큼 무니도 귀엽고 발랄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삶이 무너져가는 만큼 무니의 마음도 무너져간다. 세상의 차가움이 이토록 적나라한 영화인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포스터는 여전히 아름답기만 한 아이러니가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