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소년>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건조하다. 인물들은 표정도 크지 않고 그것도차 클로즈업도 없다. 감정 형성을 도와주는 음악도 없다. 내지르는 반항의 절규와 자전거 페달만 돌아가는 침묵의 순간을 그저 바라만 본다.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고 그냥 보기만 하다보니 한 시간 반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어린 시릴은 상처받고, 상처받고, 상처주고, 성장한다.
꾸미지 않았기 때문에 느껴지는 날 것의 상처와 외로움에 계속 눈물이 난다.시릴은 무슨 죄가 있었던 걸까. 시릴이 하는 짓은 정말 짜증나지만, 시릴이 겪은 일은 숙연해지기만 한다. 버림 받고 상처받은 시릴이 유일하게 자신을 투영한 존재가 자전거다. 영화는 자전거를 통해 시릴의 처지를 잘 빗대어 보여준다.
아빠를 잃어버린 시릴, 주인인 시릴을 잃어버린 자전거로 영화는 시작한다. 사라진 자전거를 구해 온 것은 미용사 사만다. 자전거는 팔렸었다. 하지만 시릴은 팔린 자전거라는 걸 믿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아빠는 돈이 없어 자전거를 팔았다는 걸 알고, 자신도 돈이 없다 버려졌음을 안다. 그런 시릴과 자전거를, 사만다는 늘 차에 태우고 싣는다.
그러다 또 시릴은 자전거를 잃어버린다. 동네 양아치들의 꼬임으로 자전거는 펑크가 난다. 그런데 의외로 양아치 두목 웨스는 자전거를 고쳐주며 시릴을 환대한다. 웨스는 자전거에도 시릴에게도 상처를 주고 상처를 보듬어준다. 이제 자전거는, 시릴은 한 몸이 되어 웨스를 향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을 이용한 웨스에게 상처를 받은 시릴은 아빠를 찾아가지만 또 한 번 확인 사살을 당하고 만다. 그렇게 시릴은 사만다에게 돌아가 안긴다. 사만다에게 안긴 후에야 방치되던 자전거는 안전한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동안 자물쇠만 채우면 되눈 자전거를 늘 방치해 두어 잃어버렸던 건 시릴에게도 자물쇠가 되어 지켜 줄 이가 없었디 때문이다.
그렇게 사만다에게 적응해가는 시릴은 그녀와 같이 자전거를 탄다. 그리고 시릴은 사만다가 타고 있던 더 큰 자전거로 갈아탄다. 자전거의 업그레이드이자 시릴의 성장의 순간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엔딩. 자전거는 넘어지고 시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다시 분노와 상처로 얼룩지어질 것 같던 시릴은 자전거를 타고 사만다에게로 향한다. 어디로 향할지 아는 자전거는 어떻게 커야할지 아는 시릴이다.
이 엔딩은 정말 먹먹하다. 너무나 큰 상처가 또 다시 찾아왔고 드디어 행복해지려던 웃던 시릴은 다시 표정을 잃기 때문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 그러나 다쳐도 상처받아도 그저 사만다를 향해 자전거를 달리는 모습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는 복합적 감정을 남기는 마무리이다.
어쩌면 늘 사랑받을 준비가 되어있던 시릴에게 아무도 사랑을 주지 않았고, 사랑받기 위해 모든 것을 주어도 웨스와 아빠 모두에게 버림 받았다. 돈을 훔치려 작당하며 웨스가 얼마 줄까를 물을 때 시릴은 필요없다 말하고 그럼 왜 도와주냐 묻자 널 위해서라고 답하는 순간, 돈은 훔쳤지만 들킬 것 같아 웨스가 시릴에게 독박 씌우자 돈이 궁항 아빠에게 찾아가 돈을 주며 들켜도 아빠 한테 줬다고 말하눈 순간, 가장 사랑을 갈구하지만 가장 비참하게 버림받았던 순간들이다. 표정 연기도 없이 클로즈업도 없이 음악도 없이 마음을 저리게 하는 이 순간들로 이 영화의 수준 높은 연출력이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