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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링스 Sep 02. 2019

멈춘 과거에 틈을 내어 현재를 움직이다.

액트 오브 킬링(2012)

말도 안 되는 기획이다. 승리한 인도네시아 독재자의 영광에 일조한 학살자들이 영웅이 된 사회. 그 학살자들에게 업적을 기억하는 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으로 시작하는 다큐멘터리. 그들은 자행한 살인의 가해자를 연기하고, 피해자도 연기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촬영되지 않는 순간들의 대화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를 찍는다고 속이고 영화를 찍는 과정 속에서의 인물을 몰래 찍는다.

학살자들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학살로 지금의 깨끗한(?) 사회를 구축했기에 건국 영웅 정도로 자평한다. 그 과정에서의 학살과 비인간성은 필연이기에 집단 최면으로 공고히 합리화되어 있다. 그런 그들의 집단 사상을 비집고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말도 안 되는 기획이며, 스스로의 행동을 재연하게 되면서 반성을 하게 될지, 화를 내게 될지, 지금처럼 태연할지 알 수 없는, 각본 없는 기획이다. 이 살인을 재연하는 ‘액트 오브 킬링’에 대한 반응이 어떤지 담은 하나의 실험인 영화이며, 이 파괴적 기획의 실험영화이다.

내용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기 굉장히 불편하다. 스스로 죄에 대한 객관화 경험이 없는 자들이기에 너무나 태연하게 살인을 자랑한다. 독재자들이 모두 재평가를 받고 인권의 급속 성장을 이룬 우리에게는 이해될 법한 배경이 있을 뻔했지만 이해가 불가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일제시대 일본인들을 죽인 무용담 정도랑 비슷하려나? 그래도 그건 피해자로의 명분이라도 있지...) 그런데 또 너무 상식 밖으로 저러고 있는 걸 보자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싶기도 해서 어떤 면에선 불쌍하다는 느낌마저도 든다. 하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살인이란 건 본능적으로 나쁜 것이라는 걸 그들도 알고 있단 점이다.

아무튼 결국 주인공 격인 안와르는 일종의 참회의 문턱까지 오며 영화는 끝난다. 아무래도 속임수로 시작한 촬영을 더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 외의 인물들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이 다큐는 이 자체로 바위가 던져진 연못 같다. 그간 없었던 새로운 도발이며 이슈 제기이다. 영화의 새로운 정의로 느껴졌고 영화를 꿈꾸는 학생들의 필수 관람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편집과 촬영이라는 고유의 예술을 창작했고, 소설의 스토리텔링과 연극의 연출을 한 단계 진화시켰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 모든 것에 우선해 기획 그 자체로 살아있다. 말도 안 되는 미친 기획으로 영화는 탄생했다. 영화의 예술과 스토리텔링을 뛰어넘어, 사실과 진실을 탐구하고 기록하는 것을 뛰어넘어, 영화를 미끼로 진실과 변화를 수반한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영화 형식의 새로운 정의를 던졌고, 이 영화로 인해 새로운 정의로서의 영화를 꿈꾸는 시네마 키드가 탄생함은 물론, 영화업계와 매니아들에게 자성의 시간을 선사했다. 충격으로 울렁거리는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현지 제작진의 이름을 익명(Anonymous)이라고 기재할 수밖에 없다니... 감독도 인도네시아 못 돌아간다는 기사도 있고.

안와르와 비슷한 학살자인 아디의 명대사들
“사람을 죽이는 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범죄야. 그러니까 어떻게든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해. 적당한 구실을 찾아야지. 어차피 도덕관념은 상대적인 거거든.”
“전쟁 범죄는 승자들이 규정하는 거죠. 난 승자니까 스스로 규정할 수 있어요. 더 중요한 건 진실이 꼭 좋은 건 아니라는 거예요. 좋지 않은 진실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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