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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링스 Sep 05. 2019

개인의 비극으로 풀어 낸
혐오의 사회학

아메리칸 히스토리 X (1988)

강렬하다. 영화 내 펼쳐진 이미지와 상징들이 너무 강렬하다. 그리고 그것이던져주는 메지지 역시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로서 마무리 되지 않았던, 충격의 엔딩은 그야말로 강렬하다.


사회학 입문에서 보기에도 알맞은 듯한 사회의 차별과 분노, 혐오와 집단 갈등이, 그 현상과 원인, 그리고 결과를 다 잘 담아내고 있다. 특히 한 명의 개인과 가족, 학교와 지역 사회라는 다층적 관점에서 형성되는 사회학을 잘 담고 있는데, 결국 간접적 경험이라는 사회화의 중요성을 어필하고 있다.


우리의 사회는 너무 복잡해서 설명과 추론이 어려운 다양한 영향력의 결과다. 그런 불확실성은 불안을 야기하는데, 내 생활이 어렵고 힘들수록 그 불안을 제거하고 싶어한다. 이에 따라 필요한 것이 거대담론, 사회이론, 연역적 해석이다. 아 이것은 모두 뭐 때문이야라는 한 가지의 명제. 명쾌하고 내 불행을 설명해주면 감정 또한 복잡한 감정에서 명료하게 정리된다. 분노와 혐오. 오로지 대상만 정해지면 되는 문제다.


하지만 이렇게 경험적이지 못한 사회화로 인한 혐오와 분노는 공허할 수 밖에 없다. 영화 속 학교 교장선생님의 “네가 한 행동들이 네 삶을 좋게 만들었니?”라는 질문은 그렇게 분노에 사로잡혔던 인간의 뼈를 때린다. 내가 믿었던 것들은 살다보나 다 틀릴 수 있었고, 세상만사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가득하다.


영화는 이런 혐오의 사회학을 두 시간에 응축하다보니 교훈과 깨달음을 위한 장치들이 너무 뻔하게 설정되어 있어 교과서 같은 느낌이 조금 든다. 교장이나 교도소의 동료 흑인, 아빠의 죽음과 유대인인 엄마의 새 남친 등, 시나리오라고 해도 너무 설명적인 부분이 많아서 크게 놀라거나 새로운 느낌은 적다. 그래도 강렬하게 묘사되는 이미지들 덕분에, 그리고 극단적 두 상태를 경험하는, 그리고 그런 혼란을 잘 표현해내는 에드워드 노튼의 광기어린 연기 덕분에, 영화는 교과서같지만 분명 살아 있다.


새로운 혐오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조금 초급이긴 하지만 필요한 영화로 다시 재조명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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