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를 타락시키고 인간을 조롱하는, 불쾌하지만 매력적인 조소”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요르고스 란티모스만의 불쾌한 방식은 여전하며, 이 영화에서 가장 극대화되어 있다. 찢어질 듯한 현악의 기괴한 음악은 물론이고 감정을 거세한 인물들의 대사 연기도 최대치에 달했다. 이다음 작품인 페이버릿에서 그 강도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이런 기괴함과 불편한 부조리극은 란티모스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다.
영화는 감정이 제거된 말투와 익숙지 않은 앵글, 기괴한 설정과 불쾌한 음악까지 모든 것들이 인물과 상황을 낯설게 역할한다. 글사 관객의 감정이입을 방해, 나아가 제거해 먼발치에서 이성적으로 바라보도록 강제한다. 그러다 보면 인물의 개별적 특성보단 인간 존재의 보편적 성질 위주로 보게 되고, 또 관객 자신과 대비해 보게 된다. 인물이 잘 되길 바라기보다 왜 저러지라며 철저히 생각과 고민을 강제하는 영화다. 또한 신화를 차용한 점에서 더욱 개별 인물이 아닌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란티모스의 부조리극은 먼저 비현실적이도 불편한 설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왜 저래? 하면 답이 안 나온다. 그러고 나면 그 설정을 대하는 인간의 행동과 반응을 보고, 그 행동들의 구조적인 문제와 부조리에 대해 생각하는 형식이다.
이번 영화 이야기 구조는 단순하다. 마틴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스티븐에게 마찬가지로 가족 중 하나를 죽이게 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 과정에서 최초의 죽음(마틴의 아버지)에 대한 선택권(술을 먹고 실수하는)을 가졌던 스티븐이 끝내 자신의 가족 중 한 명을 죽이는 선택권도 가진다. 첫 선택권은 처음엔 의사나 아버지라는 권위를 가진 상태의 것이었다면. 두 번째는 자신의 죄에 책임을 지며 철저하게 망가지고 초라해진 상태가 된다. 타락한 권위다. 그러나 권위가 무너졌음에도 여전히 선택 권력을 쥔 스티븐에게 안나와 킴, 밤은 비굴할 정도로 목숨을 구걸하거나 환심을 사려 애쓴다. 아무리 망가져 추억해져도 약간의 힘이 남아있다면 그 아래 더 추악해질 수 있는 것이 인간 존재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뒤틀린 조소 같다.
무서운 건 이피게니아 신화를 가져온 점에서 예상되는 영화 이후로 이어지는 생각들이다. 신화에서는 권위적인 아가멤논이 결국 자신의 명성을 위한 전쟁을 포기할 수 없어 딸을 재물로 바치고, 그걸 알게 된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그에 대한 복수로 아들이 엄마를 죽인다. 영화는 편의상 한 명의 재물을 바침으로써 마틴과의 죄는 청산했지만 아마 그 이후 신뢰가 찢어진 가족들 앞에 떡하니 마주한 마틴의 모습은 비극은 이제 시작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