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도시 부산
조금은 갑작스럽게 부산에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8월초, 더웠지만 서울의 물폭탄을 피해 다녀와서 어쩌면 다행이었던 여행. 최근엔 출장으로 부산에 간 것 말고 여행은 10년은 넘은 듯하고 그것조차 영화제를 방문하거나 친구집 놀러가서 술먹고 게임하고 놀다온 게 다였다. 제대로 여행처럼 다녀온 부산인데, 한국엔 제주도 외엔 인생적인 곳이 없다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부산은 괜찮았다.
1. 기대
대학 때부터 부산친구들 서울친구들 대화할 때 부산에도 있을 것은 다 있다, 대신 바다가 있다 정도 외엔 사실 부산은 내게 그닥 기대치는 없었다. 회도 그닥 인상적이라 하긴 힘들고 유명한 음식인 밀면, 돼지국밥, 냉채족발, 꼼장어 모두 메뉴 자체가 인상적이지도 않았다. 어쨌든 이번엔 숙소를 우연히 예약할 수 있었고 일단 가보자는 마음.
2. 비주얼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보다 좋았다. 단연코 압도적인 것은 비주얼이었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초고층 건물들이 생각보다 압도적인 비주얼이었다. 그게 해운대 바다와 함께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것은 더욱 그 자체로 볼만했다. 사진도 찍기 좋지만 택시타고 광안대교를 넘어갈 때 보이는 마린시티, 서쪽 해운대 바라보는, 또 바로 아래에서 바라보는 엘시티/시그니엘의 압도적 경관 모두 좋았다. 엘시티 레지던스 74층에 묵을 수 있었는데, 그곳에서 보이는 건물들, 해안, 광안대교, 그리고 보름달 조합은 한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차별적 비주얼이었다. 낮이든 밤이든. 뭐 이게 유럽의 무수한 도시를 동경하는 사람들 관점에서는 조악하고 세련되지 못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또 두바이가 떠오른 이유와도 비슷한 게 아닌가 싶었다. 어찌됐든 부산에만 보이는 이런 모습은 가볼만하다는 생각.
3. 카페거리
부산에서 전통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는 가지 않았다. 애초에 자연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서... 그래서 부산에서 오래 일한 팀원에게 그래도 가장 힙한 곳을 물어봤고 많은 시간을 전포동에서 보냈다. 전리단길, 혹은 전포카페거리. 음... 우선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경리단길은 그냥 경리단길이었는데 어느샌가 서울 내에서도 O리단길이 생기더나 경주나 부산까지도 O리단길이 등장해버렸다. 뭔가 다르길 바라는 마음은 애초에 없이 경리단길처럼 되기만을 바란 것 같은 멋 없는 이름들... 부산여행이지만 부산에서 찍은 사진인지 아닌지는 사실 상관없는 카페들. 그래도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나오긴 했다. 작정하고 따라한 것이다보니 서울보다 오히려 맘먹고 사진찍기는 좋았다. 다행히(?) 공식명층은 전리단길아 이닌 전포카페거리인 듯했다. 부디 전리단길은 포기했으면. 그리고 카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소품샵, 옷가게, 식당들도 있긴 했는데 전포거리나 뭐 그정도여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사진 찍기 예쁜 곳은 많다. 카페가 예뻐서만은 아닌 게, 곳곳에 남아있는 옛 가게들, 혹은 골목들과의 부조화들도 사진으로는 예뻐보이기도 했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바다, 항구, 이런 부산의 살린 카페들도 좀 더 있으면 좋겠다 생각 정도. 아니면 일본과 가깝다는 것을 적극 활용해 좀 더 왜색(?)으로 가도 좋을 것 같고. (일본식 이름, 혹은 일본어로 표기...)
4. 특산품
사실 이번 여행 음식은 다 맛있었다. 한 군데 가긴 했지만 일식집도 뭔가 더 바다재료에 진심이었고 차이나타운도 역사가 있어보였고 맛도 있었다. 그 외에 그냥 맛집들도 다 맛있었고. 그런데 여행을 끝마치고 오려고 할 때 뭔가 아쉬운 게 있다면 부산의 특산품이었다. 부산의 특산품은 뭘까? 혹은 기념품은 뭘까? 회사에서 누군가 제주도를 다녀오면 맛도 디자인도 정체성도 애매한 세 가지 맛 초콜렛들을 사오곤 한다. 백련초랑 뭐랑... 아무튼 그런 것들이라도 제주도라는 상징으로는 기능한다. 오메기떡이나 꿀빵인가 그런 것들도 어렴풋이 떠오르고, 갈치, 흑돼지 등등 제주의 특산품들도 몇 가지는 떠오른다. 반면 부산은 이런 게 어묵과 씨앗호떡 정도만 생각나는데 둘 다 선물로 사가기에 보관이나 여러가지로 좀 애매하다. 앞서 말한 백련초 초콜렛처럼 대단하지 않아도 뭐라도 좀 만들어 내야할 것 같다. 상인들 차원이든 시차원이든.
5. 택시
역시 표본은 적지만 10번 정도 택시를 탄 것 같은데, 40분 내내 깔깔대며 웃었던 적도 있고, 송정으로 가는 길에 드라이브코스로 가도 되냐며 설명해주던 분도 있다. 서울은 어차피 피곤에 지쳐 집에 갈 때나 주로 타서 모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부산사람들이 오지랖이 더 넓은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번 여행의 기억 속에 몇몇 택시들의 기억들이 같이 있는데 능청스럽고 웃기고 그러면서도 꽤나 퉁명스러웠던 느낌이 부산의 느낌이라고 기억될 것 같다.
6. 바다
나는 밤 늦게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보는 한강이 너무 예쁘다고 늘 생각한다. 넓은 강과 다리들. 어느 쪽에서 타든 가득찬 빌딩과 아파트 불빛들. 어두움과 밝음과, 외로움과 북적북적함과 여럿이 섞인 예쁜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부산에서 돌아다닐 때 낮과 밤 모두 바다가 등장할 때마다 설렜다. 제주나 속초와는 완전 다른, 도시에서 바로 바다로 튀어나가는 느낌은 아주 새롭고 즐겁다. 경관도 다양하고 좋다. 스카이캡슐이나 송정해수욕장이나, 기장이나... 점점 바다 중심으로 관광지들이 늘어나는 것 같은데 이런 점들이 무척 기대가 된다. 특히 이번에 빙수를 먹으러 웨스틴조선호텔에 갔는데 정면에 바로 보이는 바다와 모래사장, 사람들, 거대한 엘시티... 빙수는 속상하게도 정말 맛 없었지만 자릿세로는 어쩌면 더 싼 값이었다. 더욱이 기회가 되어 부산에서 요트를 타고 조금만 바다로 나간다면... 광안리, 광안대교, 마린시티, APEC하우스, 해운대, 호텔들, 엘시티... 이어지는 뷰가 무척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