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새를 기다리며

기다림의 미학

by 오리엘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는 짧은 시간을,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소에 서있는 시간을, 놀이동산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서있는 시간을, 스마트폰이라는 즐거움으로 대체하고 어떻게든 '낭비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현대인들은 이런 삶에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아마존에 따르면, 페이지 로딩시간을 10분의 1초 줄이면 매출이 1퍼센트 증가한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영상이 10초 이상 로딩되지 않을 때, 인터넷 사이트가 5초 이상 흰 화면만 떠있을 때, 우리는 바로 그 페이지를 닫고 다시 켜기를 시도하곤 한다.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마치 사치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다림은 낭비일까. 이런 생각을 하던 나는 얼마 전, 스스로에게 기다림이 무엇인지 묻는 경험을 했다.





지난주에 부산에 갈 일이 있어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을숙도에 탐조를 하러 갔다. 을숙도를 한 시간쯤 돌아다녔는데 탐조 초보자라 보는 눈도 없어 그런 건지, 새를 거의 보지 못했다. 사실 까치 몇 마리 본 것이 전부였다. 속상했다.


뚜벅이인데 생각보다 날도 덥고 햇볕도 뜨거워서 금세 체력도 바닥났다. 지친 발걸음을 이끌고 낙동강하구에코센터에 들어가 보았다. 호수를 조망하는 몇 대의 전망대 망원경이 있었다. 들여다보니 옹기종기 모여있는 민물가마우지들이 보였다. 왜가리도 한두 마리 껴있더라. 에잇, 이게 뭐야. 집 앞 안양천에서도 볼 수 있는 새들이잖아.


철퍼덕 의자에 앉았다. 내가 이거 보려고 낙동강까지 찾아온 건가 싶은 마음에 허탈했다. 그래, 아직 4시니까 그럴 수 있지. 해가 질 때쯤 되면 새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니까 조금 더 기다려보자. 망원경 근처에 앉아 더위를 식히면서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새를 기다리며 자연을 찬찬히 보다 보니 나의 탐조 경험을 돌아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오만했다. 내 탐조경험이 몇이나 된다고 바로 성공적인 탐조만 하려고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까치만 봐도 즐거웠으면서, 벌써 특이한 새가 아니면 안 될 것처럼 구는 게 어이없었다. 심지어 민물가마우지가 이렇게 여러 마리 모여있는 건 처음이었다. 겨우 한 시간 좀 허탕 쳤다고 속상해할 필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를 못 봐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KakaoTalk_20251001_223432229_05.jpg 옹기종기 모여있는 민물가마우지들 ⓒ오리엘
KakaoTalk_20251001_223432229_01.jpg 민물가마우지가 잠수를 해서 물고기를 잡느라 물에 젖은 모양이다. 다시 날기 위해 햇볕에 날개를 말리고 있다. ⓒ오리엘



웬걸, 한결 마음이 편안해져서 새들을 더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하니 귀신 같이 새들이 나타났다. 호수에 쇠백로, 중대백로와 오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각종 새들이 호수 위를 지나 바다 쪽으로 날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가을이라 철새도 있었을 테고, 집 근처에서 보기 힘든 바다조류도 있었을 것이다. (내 지식이 짧아 어떤 새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해 밖으로 나왔다. 에코센터 바로 앞 수풀에 새소리가 잔뜩 들려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작은 나무들 사이에서 박새를 만났다.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멀린 앱을 켜두고 새소리를 들려주니 쇠박새, 오목눈이와 흰꼬리딱새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초보인 나에게 작은 새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두근거렸다. 날도 시원하겠다, 신이 나기 시작했다.


바다 쪽으로 나가보니 괭이갈매기 백여 마리가 나무 시설물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잠잘 곳으로 점찍은 모양이었다. 또다시 왜가리도 두세 마리 정도 껴있었다. 갯벌처럼 젖은 흙 위로는 (아마도) 흰물떼새가 지나갔다. 가까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기 새들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KakaoTalk_20251001_223432229.jpg 자려고 모여있는 새들 ⓒ오리엘



멀리서 새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날의 탐조는 기대하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오지 않는 새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냈다. 그렇다면 오늘은 낭비였을까. 얼마 전에 읽은 책이 떠올랐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리트윗을 받고 싶은 열망은 기다림에 내재된 또 다른 인간 경험인 기대를 약화시킨다. 신의 음성을 듣기 위한 겟세마네 수도승들의 기다림은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다. 그들은 기쁘게 그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의 기다림은 고통스럽지 않고 즐겁다. 영상이 로딩되는 1초가 너무 길고 1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세상은 기대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책 <경험의 멸종>, p.159


돌이켜보면 낙동강까지 먼 길을 가고, 뙤약볕이 지나길 기다리고, 새를 찾아다니고, 먼발치에서나마 새를 지켜보는 것은 지루하지 않았다.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여정을 기대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행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가까이서 많은 새를 볼 수는 없었지만 모든 여정이 행복했다.


기다림을 온 힘을 다해 포용해야만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체념이 아니다. 기다림도 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목적에 뚝딱 도착하는 그 순간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지난한 여정도 내 삶의 소중한 부분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을숙도를 나섰다.


KakaoTalk_20251001_231829523.jpg 낙동강의 멋진 석양 ⓒ오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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