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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May 03. 2020

06 그것은 내 몸에 불어닥친 커다란 파도였다

일 년 후 대학병원 피부과에서 알게 된 사실

피부과에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로부터   , 2019년이었다. 일전에 다니던 피부과에서 원인을 찾으려면 대학병원에 가서 모든 종류의 검사를 해보는  낫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 아예 대학병원으로 예약을 잡았다. 아픈 얘기를 다시 끄집어내서 하는 것이  유쾌하진 않아서 어느 순간 통증 관련 병원은  이상 다니지 않았지만 피부는 통증과 다른 차원이었다.  통증에 수반되는 증상이 아닌, 피부 자체의 문제로만 봐야   같았다.

     

가려움은 통증만큼이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나는 주로 부드럽지 않은 모든 천, 물건에 가려움을 느꼈고, 심할 때는 선풍기 바람마저 가렵게 느껴졌다. 옷을 입고, 옷을 벗는 것. 모든 것이 나에겐 챌린지였다. 리넨, 빳빳한 면 직물 등을 피해 레이온, 모달 등 극도로 부드러운 소재의 옷만 입은 지 일 년도 더 지난 상태였다.    

 

사람은 많지 않았고 의사 선생님은 매우 친절했다. 나는 내가 긁지 않는 이상 피부에 발진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라 상태에 대해 설명할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모든 매끄럽지 않은 것들에 온몸이 가렵고, 약을 먹고 완화된 적은 없어요.’ 내가 할 이야기는 이게 다였다. 의사 선생님은 할 수 있는 검사를 모두 다 해보자고 하셨다.    

 

- 그런데 전혀 알레르기가 없이 살다가 갑자기 생길 수도 있나요?     

- 그럴 수도 있어요. 수술을 한다거나, 사고가 난다거나, 면역체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면 몸의 체질이 바뀌게 되기도 해요.   

  

아, 그렇다면 말씀을 드려야 하는 걸까. 잠시 고민이 되었다.     


- 혹시 증상이 나타날 때쯤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피부과에 와서 통증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기에 조금 머뭇거렸지만 머릿속으로 생각을 빠르게 정리하고 최대한 담백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 사실 제가 작년 상반기에 목, 어깨 통증이 심했어요.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했는데 디스크 파열도 아무것도 아니라 결국 섬유근육통이라는 진단으로 끝났고요. 그때 너무 아파서 4월에 정신과 취침 전 약을 60알 정도 먹었어요. 깨고 나서 이틀 정도 후부터 몸이 미친 듯이 가렵더라고요.


- 60알이요?

- 네. 통증이 너무 심했거든요. 안 깨어날 줄 알았는데 깨어나더라고요.


민망한 마음에 괜한 헛웃음을 더했다. 이런 고백을 꺼내려면 분위기를 너무 무겁게 만들지 않기 위해 말하는 내가 가벼워야 하니까.     


- 아이고.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아팠으면 그랬어요.’ 하는 눈빛으로 내 손을 잡으셨다.


피부과에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고, 그냥 덮어두었던 기억이었는데, 말로 꺼내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 당시의 감정과 무게가 느껴졌다. 그 기억을 꺼내자 순식간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니, 지금 내가 이러려고 온 건 아닌데. 여긴 정신과도 아니고 재활의학과도 아닌데. 피부과에서 쉬이 들을 수 없는 고백이라 나보다 열 살쯤 어려 보이는 안경 낀 전공의의 얼굴에 순간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기억은 너무 무겁고 슬퍼서 사실 그대로 삼십 분쯤 쉬지 않고 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애써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말렸다.     


- 그런데 그 당시에 약을 먹고 나타나는 약진은 없었고, 피부과에서도 정신과에서도 약 때문에 가려운 건 아니라고 하셨어요.     


- 그게 원인이 됐을 수도 있어요. 어떤 게 계기가 되면 몸이 큰 변화를 겪을 수 있는데 그 파도가 잠잠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어요.          

3주 동안 증상이 나아지든 아니든 약 꼭 먹고, 그다음에 검사 결과 보고 다시 볼게요.    

 

당시엔 임신을 준비하는 상태라 약을 일단 가려서 써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약의 효과가 없으면 적극적인 치료를 해봐야 한다며 그럴 경우엔 임신 계획을 미뤄야 한다고 말했다.     


- 임신은 몸의 큰 변화예요. 심리적으로도 큰 변화가 오는데 특히 마음이 여리시잖아요. 피부가 나아지지 않았는데 임신을 하게 되면 몇 배로 힘들 수 있어요. 되도록 피부 치료를 하고 나서 임신을 계획하는 게 좋겠어요.   

  

엄마도 몰라주는 부분인데, 의사 선생님들은 모두 나의 임신을 말리고 있었다.           

병원을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걸으며 난 그냥 울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작년의 기억, 그렇게 시작된 나의 피부 증상. 임신을 만류하는 선생님, ‘좋은 소식’이 있어야 될 거라고 스치듯 종종 말하는 엄마.

그리고 그 순간에도 뜨거운 햇볕이 닿는 모든 곳, 옷과 가방이 닿는 여러 부위가 가려웠다.

젠장 피부는 진짜 쉴 새 없이 말썽이네.라고 생각하며 약국으로 향했다.           


     



피 8통을 뽑아 여러 가지 검사를 했지만 나는 어떤 화학물질, 일상 물질, 음식에도 알레르기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내 몸속에 일어난 파도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2019년 그날의 일기와 메모. 나는 나의 기록에 빚진 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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