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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May 03. 2020

05 극한의 고통, 가려움증

약물 과다복용, 그 어리석음의 말로

   다음 날 오후 6시쯤 깨어났다. 이번엔 첫 번째와 많이 달랐다. 굉장히 어지러운데 그것이 내 머리가 아니라 땅과 방이 흔들리고 있었다. 속이 너무 메스꺼워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다리에 힘이 없어 계속 풀썩 주저앉았다. 그런 상태가 잠을 자고 일어나 그 다음날 일요일까지 계속되었다. 오빠에게 물어보니 물을 많이 마시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가려움증이 바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온몸이 가려운 증상이 나타난 것은 4일 후인 화요일이었다. 제일 먼저 피부과에 갔다. 통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음을, 잠을 잘 때만 통증이 없기에 조금 길게 자 볼 요량으로 며칠 전 취침 전 약을 과다복용했음을 말했다. 가려운 부위를 묻기에 모든 곳이라고 말했고, 붉게 올라오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몸 이곳저곳을 보았지만 내가 긁은 흔적 말고는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진 않았다. 피부과 선생님은 약에 의한 것이라면 빨간 반점이 오돌토돌하게 나타나는 약진이 무조건 나타나기 마련이라며, 이 가려움의 원인이 약은 아니라고 했다. 두드러기도, 알레르기도 아닌 그저 원인을 알 수 없는 가려움증이라고만 했다.      


- 원인을 알 수 없는 가려움증이 많나요?
- 그럼요,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약을 먹어버렸기 때문에 유 원장님에게도 갔다. 역시나 혼이 났고, 이번에는 먹은 후 어지럽고 메스꺼운 이상 반응으로 혼쭐이 났기에 다시는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이 가려움. 이 가려움이 대체 무엇 때문이냐고, 내가 약을 많이 먹은 것 때문이냐 물으니 유 원장님 역시 그것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발진이나 약진이 없다면서 약에 의한 피부염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발진 : 피부가 일시적으로 붉어지며 염증과 부종을 동반함.
약진 : 약물이나 그 대사물질에 의해서 나타나는 약물 부작용 중 면역 반응에 의해 나타나는 부작용    (출처: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정보)


내가 잘못을 저질러서 벌을 받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지만 의사 선생님 두 분이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자책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상세불명의 피부염이나 두드러기는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아무 이유 중에 약물 과다복용이 해당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절대 아니라고 단호히 선을 그어주신 두 분의 의사 선생님께 아직도 감사한 마음이다.  

    


  가려움증은 통증과는 별개로 극한의 고통이었다. 그땐 정말 매 순간이 괴로웠다. 가려움이 느껴지지 않은 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몸에 닿는 모든 것에 민감해졌다. 면으로 된 것도 입지 못 했고, 면으로 된 수건도 내겐 거친 자극일 뿐이었다. 내 머리카락이 얼굴과 목에 닿는 것도 가려웠다. 손목에 무심코 끼우고 다니던 머리끈도, 시계도, 옷의 소매 단도 모두 나를 자극했다. 가방, 필통, 의자, 종이까지 매끈하지 않은 모든 것이 모두 나에겐 가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옷을 입는 것부터가 나에겐 힘겨운 도전이었다. 옷, 양말, 화장품까지 모두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저 버틸 뿐이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온몸이 가려웠기 때문에 잠을 자지 못 했다. 이불도 가려웠고, 공기가 닿는 것도 가려웠으며, 가만히 있는 것도 모두 다 가려워서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 했다.


통증보다 더 한 괴로움은 가려움이었고, 그보다 더한 괴로움은 가려워서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 5시간도 자지 못한 상태로 운전도 하고 일도 하다 보니 왜 사람을 잠에 재우지 않는 것이 최악의 고문 방법인지 알게 되었다.     


통증 <<<<<<<극한의 가려움 <<<<<<<<<<<<<<<<<<<<<극한의 가려움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것     


당시 제정신이기 어려웠던 나는 어느 때보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는데, 그때가 중간고사 시험 출제 기간이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학교를 쉴 수도 없었다.) 하루에 삼십 분쯤 자고 출근을 하면 세상과 내가 분리된 느낌이었다. 잠을 자지 못해 멍한 느낌과 내 몸과 세상 모든 것이 닿는 이질감이 더해져 내가 이 세상에 제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정말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나 혼자서만 가려웠다. 눈에 보이는 발진이라도 있다면 내가 느끼는 가려움의 증거가 되어 줄 것 같은데. 그 상황은 마치 날 아무리 괴롭혀도 다른 이들에겐 흔적 하나 보이지 않는 통증 놈 같았다. 보이지 않는 통증과 보이지 않는 가려움.      


내가 그 통증이 최악의 고통인 줄 알고 그것을 잠깐 멈춰보려고 했더니 그거 최악 아니라고, 그 뒤에도 이렇게 무궁무진한 것들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폭력적인 통증 놈에게 똑같이 폭력적으로 맞대응했다가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너 그거 아니랬잖아.

넌 왜 중간을 몰라? 약 그거 한 번에 먹지 말라고.     


첫 과다복용 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마 나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줬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어리석게도 그 기회를 보기 좋게 뻥 차 버렸다.          



그 일주일은 떠올리고 싶지도, 잘 떠올려 지지도 않는다. 잠을 못 자 정말 정신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일주일 내내 날마다 피부과에 가서 항히스타민제를 주사로 맞고,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랐고, 처방받은 약을 먹었다. 일주일 후엔 가려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단계에서 그나마 세 시간은 잘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하지만 그 사이 봄에 입으려고 주문했던 리넨 재킷이나 면티, 면바지, 슬랙스, 셔츠 등은 모두 반품했다.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옷의 어느 부위든 바느질한 거친 부위가 거슬리면 안 되었고 옷의 택도 웬만하면 다 떼어버렸다. 치마의 경우, 길수록 더 가려웠다. 무릎 아래로 살랑거리는 것이 볼 때는 참 예쁘지만 그때마다 다리에 닿기 때문에 살랑거림이 나에겐 고통스러웠다. 어느 옷이 되었건 일단 재질은 무조건 부드러워야 했으며 가능하다면 대체로 피부와 접촉하는 횟수를 줄이는 모양의 옷을 선택했다.   


   

지금여전히 내가 구축한 부드러움의 세계 속에서만 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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