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통증에 대한 이상한 오해를 한다. 바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아프지 않을 거라는 것인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심해지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있던 통증이 사라지진 않는다. 통증은 그 자리에 있고 나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다.
한창 다이어리 꾸미기에 빠져있던 때였다. 인터넷으로도 이미 한 트럭을 샀지만 직접 보고 사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쯤은 스티커를 사러 나갔다. 왕복 삼십 분 정도의 거리라 돌아올 땐 등이 쪼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스티커 사러 갈 땐 안 아프시지 않나요?”
그즈음 병원을 찾았을 때 유 원장님이 그렇게 묻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요?”
나는 이런 쉰 소리를 하는 인간은 처음 본다는 눈빛으로 반문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어떻게 통증이 사라지겠느냐며, 오히려 움직여서 더 아프기만 하다고 말했다. 원장님은 알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나의 통증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한 것 같았다.
쓸쓸해진 마음으로 터덜터덜 집에 돌아와 섬유근육통 동지인 제자 강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오늘 정신과 쌤 진료받고 왔는데 내가 힘들어도 스티커 사러 일주일에 두 번은 외출한다고 하니까 그땐 안 아프지 않냐고 하는 거야. 그래서 아니요, 아픈데요. 그랬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프지
ㅋㅋㅋㅋㅋ 그땐 안 아프지 않냐는 질문 되게 웃기다
오랫동안 마음의 위안을 받아왔던 원장님에게 예상 밖의 말을 들어 속상한 날이었지만 나와 공감해주는 동지가 있으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건 정말 웃긴 질문이었다. 그땐 안 아프냐고? 그땐 안 아프냐니? 어떻게 그땐 안 아프죠?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우린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후 나는 문구점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만성 편두통이 두 달째 이어지며 매일을 고통 속에 살고 있던 나는 생각이 멈추질 않아 얼마 전부터 심리 상담을 받고 있었다. 손 수술로 문구점을 닫았다가 프린터를 고치고 문구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상담 선생님은 문구 이야기를 하는 내 눈이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며 그래도 작업을 할 때는 머리가 덜 아프지 않냐고 물었다.
“아니요?”
나는 또 일 년 전 표정을 지었다. 문구 작업을 하면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머리를 쓰니까 두통이 더 심해진다고, 안 아픈 게 아니라 아픈 머릴 잡고 그냥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내 마음을 고치러 간 곳에서 자꾸만 오해를 받자 힘이 빠졌다. 내 통증이 단지 심리적인 문제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신체에 오롯이 실재하고 있다는 걸 믿어주길 바랐다. 악화되긴 쉽지만 완화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아주길 바랐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정말 통증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통증이 사라질 거라고 그렇게 단순히 말하면 좀 속상해진다. 실제로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통증 때문에 못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처음 2년은 목을 숙일 수 없어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기타를 눈앞에서 치워버렸고, 편두통 때문에 그 좋아하는 티비 드라마 보기를 그만두었다. 글씨 쓰는 자세가 어깨 통증을 악화시켜 좋아하던 만년필 필사도 멈춘 지 꽤 되었다. 공연을 할 수도, 보러 갈 수도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잠깐 기분이 좋아질 순 있었다. 하지만 잊을 새라 통증은 금세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예 포기하거나 몸에 무리가 되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하게 되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몸 상태가 무조건 악화된다. 반대로 좋아하는 일을 해서 스트레스를 덜어내 몸이 가벼워진다면 참 좋겠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종일 노래하고 기타 치며 글을 쓰고 드라마를 몇 편이고 내리 보다 행복하게 잠에 들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런 일은 모두 통증으로 이어진다. 통증을 악화시키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은 마음 편히 가만히 누워 음악을 듣거나 팟캐스트를 듣는 일 말곤 찾지 못했다. 그렇게 몸을 완전히 이완하는 일 말곤 아프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통증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건 마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