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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May 29. 2020

14 휴직 후 한동안 묘한 기분, 병원, 보톡스

2019년 4월

나는 2019년 3월 25일부터 병가에 들어갔다.     


한동안은 기분이 묘했다. 학교에 나가지 않는데도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불안감에 시달리는 일이 잦았다.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긴박한 상황의 악몽을 자주 꾸었고 자면서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일어나면 옷이 흠뻑 젖어있었다. 출근할 때의 긴장감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 같기도 했고, 출근하지 않는다는 불안감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유 원장님은 자율신경계의 이상 반응이라고 하셨다. 내 몸은 어찌됐든 오작동하고 있었다. 내 본성은 게으른 베짱이에 더 가까운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온몸에 스며든 일개미 근성에서 단번에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나는 학교일과가 끝나는 오후 4시 40분이 지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묘한 불안감을 마음 한켠에 갖고 있었음에도 휴직기간은 대체로 평화로웠다. 일상적으로 마주했던 거의 모든 스트레스 요소*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출근의 부담감도, 운전의 긴장감도, 시간 약속에 대한 압박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일도 없었다. 힘들 땐 언제고 누워 쉴 수 있었고 나에게 가장 편한 옷을 입고 있을 수 있었다.     


* 여기서 말하는 스트레스 요소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감정적으로 ‘스트레스 받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사람의 몸은 외적/내적 위협에 처했을 때 자동적으로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게 설계되어 있고, 그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 스트레스 요소이다.      

- 스트레스 요소 stressor : 어떤 상황에서 유기체가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외적 혹은 내적 요인들
- 스트레스 반응 stress response : 스트레스 요소와 같은 긴박한 위협에 처했을 때 유기체가 나타내는 자동적인 신체적, 심리적 반응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그리고 눈과 귀가 조용해졌다. 학교는 참 쉴 새 없이 눈과 귀가 소란스러운 곳이었고 나는 그렇게 나의 감각을 모두 민감하게 열어놓고 있는 것이 매우 지치는 일이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버거웠던 2016년부터는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느낌과 눈 주변과 입 주변이 저릿저릿한 증상이 생겨났다. 아마도 하루 종일 오감에 집중하기에 주먹을 꽉 쥐었다 풀었을 때 손이 저리는 것처럼 항상 눈과 입이 저릿한가 싶었다. 그렇게 온 얼굴이 저리도록 온 힘을 다해 보고 듣고 말했다. 2016년은 나에게 유독 참으로 힘든 한 해였다.   

  


시간의 여유가 생겼으니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섬유근육통으로 유명한 서울의 병원에 가볼까하다가 그곳까지 갈 체력이 없어 그만두었다. 일상의 스트레스 요인을 제거했다고 통증이 경감된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장거리 이동은 어려웠다. 어차피 약 처방은 어디나 비슷할테니 작년의 검사 결과가 남아있는 B대학병원의 신경과에 진료 예약을 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진료과와 교수 소개, 담당 진료과목을 꼼꼼히 읽어보고 결정한 것이다. 아픈 이후로 언제나 그랬듯이 A4용지에 사람 몸을 앞뒤로 그리고 통증부위를 표시했다. 아래엔 그동안의 병력을 간략하게 적고, 증상도 요약해 적었다. 예약날이 되어 병원에 가 신경과 교수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는 내가 가져간 종이와 재활의학과의 이전 진료기록을 번갈아 보면서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진료기록을 살펴보는 그의 마우스 스크롤 소리가 조금 심드렁하게 들렸다. 검사를 더 해볼 것은 없는지, 약은 시도해볼 것이 없는지 내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물었고 그는 그저 ‘검사해볼 건 더 없겠는데요, 약도 먹어볼 건 다 먹어봤네요.’라며 질문에 대답만 할 뿐 진료에 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전의 진단대로 섬유근육통이 맞는 것 같다며 규칙적인 생활과 규칙적인 운동을 하라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다른 병원에 갔어도 들었을 이야기였겠지만 이 의사는 공감의 자세가 전혀 없어서 그런지 듣는 나도 그닥 경청의 자세가 되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일을 쉬고 있다는 말에 그가 ‘일은 계속 하지 그러셨어요,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게 좋은데..’라고 대답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그에게서 들을 말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가 몇 가지 약을 처방해주고 한 달 후에 오라고 했지만 나는 약을 먹지도, 병원에 다시 가지도 않았다.     


얼마 뒤 TV에서 그 의사가 지역방송에 출연해 대학병원 교수들이 많이 하는 질병 관련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TV에 나오면 유명하거나 실력 있는 의사라고 생각해서 찾아가는 사람도 있을 텐데 저런 사람도 TV에 나오는구나, 하면서.     


2019.3.27 B대학병원 진료 후 오빠와의 카톡

목의 통증이 계속 극심하여 며칠 후엔 집 근처의 통증의학과에 가서 알 수 없는 비싼 주사를 맞았다. 하지만 얼얼한 듯 마취된 주사의 효과는 2시간 만에 사라지고 오히려 통증이 악화되었다. 통증의학과에선 근육의 촉진은 뒷전인데다 주사 성분에 대한 설명은 자세히 해주지 않으면서 비싼 비급여 주사를 선호하기에 웬만하면 가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날은 너무 아파 급한 마음에 혹시나 싶어 한번 가보았던 것인데 역시나 통증의학과에 대한 나의 경험은 개선되지 않았다. 통증이 갈수록 심해져서 그날 맞은 주사의 세부내역서를 오빠에게 찍어서 보여주니 이것저것 말도 안 되는 걸 한꺼번에 다 놓았다고 했다. 주사만 맞아도 급성 손상인데 물리치료에 체외충격파까지 하루에 다 한 것은 치료를 잘못한 것이라고, 같은 부위에 열, 전기로 충격을 주면 손상이 더 심해져 통증이 악화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사기꾼이라고도 했다. (나는 장사꾼이라고 받아쳤다.) 그날 나는 주사 15대 정도와 아주 짧은 체외충격파 치료에 89000원을 지불했다. 그 후로도 어쩔 수 없이 마취통증의학과에 몇 번 더 갈 일이 있었지만 딱히 좋은 기억은 한 번도 없었다. 이름에 혹해 많은 통증환자들이 찾아갈테지만 나는 통증을 이해하는 통증의학과 의사를 단 한명도 만나지 못했다. 마취통증의학과라기보단 마취비급여주사의학과라고 부를 수나 있을까 싶다.     


2019.3.31 오빠와의 카톡



4월 초에는 오빠가 있는 병원에 가서 목과 승모근에 보톡스를 맞았다. 통증이 극심하니 아예 근육을 마비시키는 방법을 써본 것이다. 보톡스는 리도카인 같은 마취제와는 달리 약효가 최대 3개월까지 지속된다. 그러니 효과가 있기만 한다면 3개월간 무통의 상태로 지낼 수 있는 것이라 가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다. 하지만 하루에 주사 가능한 최대 용량을 맞았는데도 통증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나의 통증은 보톡스주사로 커버할 수 있는 범위와 정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또한 몇몇 근육이 마비되어 목을 가누기 힘들어지니 특정 자세에서는 오히려 불편함이 가중되었다. 오빠와 나, 둘 다 몇 달 간 기대했던 치료법이었고 통증에 관해서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는데 전혀 효과가 없자 실망이 컸다. 나의 바람과 오빠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통증은, 그놈의 통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실망한 남매. 갈 길을 잃은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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