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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Jun 15. 2020

18 복직을 해야 할까

휴직한 지 두 달 만에 복직 고민이라니

5월 중순쯤 되자 나는 복직을 해야 할지를 두고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서류상 나의 휴직은 8월 31일까지. 다음 학기 구성을 위해 7월 초까지는 학교에 나의 의사를 전달해야 할 터였다. 그래서 휴직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2019.3.25. 일자 병가 시작) 나는 복직 여부를 고민하는 입장이 되었다.     


매일 생각했다. 이 정도 상태면 일을 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하루하루를 보내며 항상 그 ‘정도’를 가늠해보았다. 테이핑을 하고 외출 2시간쯤의 일정까지 완수한 날이면 복직을 해도 되려나 싶다가도,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통증의 날들엔 다시 포기하는 일을 반복했다.     


통증이 문제였다. 당연하게도 두 달은 몸이 나아지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나름 보톡스 시술을 시도해보았고 재활 필라테스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지만 통증이 나아지진 않았다. 좀 더 길게 보고 뭐라도 결정을 내리고 싶었지만, 조직에 속해있는 한 그 보폭을 맞추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쉬어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일이라도 해야 할지, 일을 하는 것이 통증을 악화시킬 테니 별 호전이 없어도 계속 쉬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하지만 쉬어도 호전되지 않는다고 복직을 생각한다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했다. 아픈 이후 나는 ‘호전’의 순간은 거의 겪지 못하고 ‘악화’만 몇 번 있었는데, 그렇게 보면 ‘현상유지’란 그리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현상유지도 딱히 몸이 나아진 상태는 아니니 복직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돌아가면 하루 종일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다가 집에 와 그대로 쓰러져 버리는 3월의 모습을 반복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일기를 쓰는 것마저 힘들었다. 나의 주 통증 부위는 목과 어깨, 등이었는데 글씨를 쓰는 자세는 꽤 괴로웠다. 사방으로 당기는 근육의 뻣뻣함과 통증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것조차 힘들어 그저 허공을 응시한 채 글씨를 써 내려가기도 했다. 그즈음의 일기는 글씨가 정말 엉망이었다.     

2019년 5월 일기장을 보지 못하고 썼던 일기

그런 상태이면서도 나는 ‘복직을 할까 말까’에 대한 일기를 쓰고 있었다. 당연히 ‘이런 상태면 복직은 못하겠다.’라고 쓰고 있어야 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나는, 일기 한 장 쓰는 것도 힘들어하는 주제에 마음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어딘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책도 원하는 만큼 읽고 싶었고,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싶기도, 글을 쓰고 싶기도 했지만 통증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목’이 개입되지 않는 취미는 찾을 수가 없었고 기껏해야 한 시간 정도 리모컨으로 전자책을 조금 읽을 뿐이었다.    

 

나는 나의 쓸모를 찾고 싶었다. 그 어떤 유의미한 활동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는 것만을 지켜보는 것은 한없이 지루했고, 내가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무엇이 됐든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말은 다시 나에게 질문으로 돌아왔다.

‘지금의 상태로 학교에 돌아가는 것이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기여가 될까?’     

나는 쉽사리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치 그것이 별개의 문제인 듯 6월 내내 복직 여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통증은 통증이고, 일은 일대로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매일 아침 피로에 절은 몸을 이끌고 일터로 나섰을 엄마, 무겁고 많은 쓰레기, 걷는 게 걷는 건지 제정신으로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목소리. 일은 어찌 됐든 해야만 하는 것이고, 하다 보면 아픈 것도 잊게 되고, 집에만 있으니 더 아픈 거라고 누군가 내게 말했던 것만 같았다.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통증을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라던 수많은 의사들의 목소리도 겹쳐졌다. 그렇다면 일상생활도 중단한 지금의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다.     


‘일하는 건 일상이 아닙니다.

밥 먹고 산책하고 이런 게 일상이죠.’


다행히 유 원장님의 단호한 한 마디에 ‘일상생활 유지’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의 휴직 연장을 적극 찬성하는 한 사람이기도 했다. 내 몸의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세 사람-남편, 유 원장님, 필라테스 선생님-은 모두 휴직 연장 쪽에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보다도 나의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었던 나는 끝까지 복직 여부를 놓고 고민의 끈을 놓지 못했다.     


고민의 흔적들

교감선생님께 약속한 날짜가 다 돼서야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마음 편히 쉰 것은 4월 한 달뿐, 두 달 정도를 복직 고민에 썼으니 일을 쉬면서도 마음은 정작 편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 6개월은 정말 온전히 편하게 쉬겠노라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는 남색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가 휴직 서류를 내고 왔던 날의 모습이 영화의 스틸컷처럼 정지되어 머릿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나의 기나긴 고민은 결과적으로 모두 쓸데없는 짓이 되고야 말았다.                





학교에 휴직 서류를 내고 온 다음 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9.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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