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어렵게 꺼내는 이야기

by 물고기

2016년 어느 가을날, 학교에서 한 기관이 위탁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지의 여러 질문 중 이런 항목이 있었다.


Q. 귀하는 왜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습니까?

① 안정성 ② 보수 ③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④ 학교가 좋아서 ⑤ 복지 ⑥ 기타 ( )

나는 6번 기타에 체크하고 괄호 안에 이렇게 적었다.

시험에 붙어서.



나는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영어를 좋아했고, 고등학교 시절 때마침 토익점수가 있어 모 대학 영어교육과 수시모집 특기자전형에 원서를 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학교에 진학했지만, 영어를 좋아했을 뿐 교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학부 시절 진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별 소득 없이 3년이 흘렀다. 고민이 많았기에 휴학을 하고 싶기도, 어학연수를 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하면 임용고사 보는 것이 1년이나 늦어지니까, 빨리 합격해야 하니까, 나는 착실하게 학교를 다녔다. 내가 선생님이 되고 싶은지, 임고를 볼 것인지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교사가 되고 난 후’로 미뤄졌다. 누구의 의사였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순간부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내가 교사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4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방학, 다들 그러하듯 임용고사 준비를 시작했는데 모두가 강의에 몰두한 과 자료실에서 홀로 떨어져 나온듯한 이질감을 느꼈다. 나는 그곳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임용고사를 보지 않을 생각으로 가지고 있던 원서를 친구들에게 중고로 넘기고 모든 스터디 모임에서 나왔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을 나열해보았다. 글쓰기, 방송, 영어 같은 것들. 당장 글을 쓸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일기장에 10년쯤 경험이 쌓여야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적었다.


2007년, 대학교 4학년 당시의 일기장

몇 달간 다른 진로를 고민해보아도 딱히 내가 유리한 조건을 갖춘 분야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5월에 다녀온 교생실습으로 학교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어 임용고사를 고려해보는 것이 시의 적절했다. 교육실습은 그저 소풍 같은 것이었으며 교사 일의 실체를 10%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다른 결정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의 경험만큼만 세상을 보았고, 실습 경험이 썩 나쁘지 않아 임용고사 응시를 재고해보았다. 3년간 전공수업을 들어 약간의 기본지식이 있고, 남은 시간이 4개월뿐이라는 점에서 기회비용을 따져보았을 때 임고에 도전해보는 것이 그리 나쁜 선택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남들보단 훨씬 늦은 8월부터 본격적으로 임고 준비에 돌입했다.


나는 나름 치열하게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애초에 내가 임용고사를 보지 않는 선택지란 아예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임용 강의를 듣던 겨울방학 때, 외할머니는 전화통화를 하면 나를 ‘임 선생’이라고 불렀다. 엄마는 고향에서 의대생이 기숙사에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고 전화를 했다. 나는 ‘남들 보기엔 좋아 보여도 본인은 괴로울 수도 있지.’라고 말했다. 임고를 보지 않겠다는 말을 할 순 없었다. 몇 년을 괴로워하고, 임용 강의를 듣다 뛰쳐나와 혼자 밤거리를 정처 없이 떠돌다 도착한 곳이 결국 모두가 원했던 당연한 종착지라니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나의 방황이 정해진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언니가 없다. 가상의 언니에게 도움을 청하곤 하던 일기장 속의 나였다.

나는 ‘이번에 떨어지면 교사 쪽은 다시는 쳐다도 안 봐’라는 마음으로 공부했다. 교사도, 임용 공부도 모두 진절머리가 났기에 임고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떨어지면 그대로 손을 털고 일어나 다른 진로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4개월을 공부하고 임고에 합격했다. 나는 스물셋에 꼼짝없이 교사가 되었다.

그때 떨어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중등 임용고사는 붙는 사람보다 떨어지는 사람이 더 많은 시험이니까. 경쟁률이 20:1이던 때라 현역에 붙는 선배들도 드물었고, 재수, 삼수,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임고에 투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교사를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때 불합격하는 것만이 유일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졸업 후 백수가 되는 것이 싫었고, ‘***도 별 수 없네.’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워낙 붙기가 어려운 시험이라 학부생 때 성적이 좋았던 선배들도 시험에서 떨어지곤 했는데, 매 해 합격자 발표가 나면 그런 이들이 사람들의 뒷담화 대상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나는 학부 성적이 좋은 편이었고, ‘그렇게 학점 좋아봤자 임고 떨어지면 다 소용없어’ 같은 수식어가 내 이름 앞에 붙는 것이 싫었다. 교사에 대한 열망은 없었다. 나는 단지 내 눈앞에 주어진 시험에 충실했을 뿐이다.


경쟁률이 높았고, 현역에 붙기는 어려운 시험이었다. 부모님이 기뻐하셔서 좋았다. 여러모로 하루 정도는 기뻤다.



하지만 주로 더 큰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높고 견고한 어떤 봉우리 위에 올라와 있었다. 상황에 떠밀려 어딘가 올라오긴 했는데 그건 내가 오르고 싶던 봉우리도 아니었고, 내려가서 다시 다른 곳을 오르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았다. 아니, 내려가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내가 교사가 된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기뻐하고 만족하고 있었기에 그 평화를 깰 순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나를 칭찬하고, 부러워하고, 축하했지만 나는 그 산 꼭대기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죽기 전엔 내려가지 못할 것 같았다.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양희은 〈봉우리〉中


그렇게 기간제 교사도, 학원 강사 경력도 한 번 없는 나는 스물셋에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남자중학교에 발령을 받게 되었다. 2008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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