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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Nov 08. 2020

통증 때문에 슬프진 않아

괴로울 뿐.

통증 때문에 슬프진 않다. 괴로울 뿐. 통증으로 인한 상실을 애도한 적은 있지만 통증 자체는 슬픔이 아니다. 괴로움이다.     


세 시간 이상의 외출은 버거워지고 여행을 못하게 되고 예전처럼 운동을 하거나 공연을 할 수도 없는 것. 그건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건 통증이 가져온 결과다. 통증이 슬프진 않았다.  

   

‘통증의 슬픔과 기쁨’이라는 제목을 제안받았다. 통증은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은걸. 듣자마자 마음이 멈췄다. 통증으로 바닥을 찍어봤던 필라테스 선생님은 그 제목을 듣고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살아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간절하게 내 책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간절하므로 그 제목의 책을 쓸 순 없었다.




새로운 통증이 생겨버렸다. 손과 발이 이전과는 다른 느낌과 강도로 저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팔이 굳어있고 손과 발에서 불이 난다. 잠에서 깨서도 한동안 일어나질 못한다. 양손이 모두 저리므로 주무르는 것도 힘들다. 멍하니 노래를 들으며 몸이 조금 풀리기를 기다린다. 요새 가장 많이 듣는 노래는 이영훈의 ‘우리, 내일도’이다.

    

툭하면 죽을 거라는
친구와 함께 밥을 먹는다
살아서 보답해야지
살아야 갚을 수 있잖아
이영훈 – 우리, 내일도 中 (곽진언 작사, 작곡)     


죽고 싶진 않지만 이렇게 괴로운 통증이 찾아올 때면, 죽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해결책이 없어 헤매는 때는 앞이 보이지 않아 더 막막하기 때문이다. 죽고 싶진 않다. 그냥 그런 말로 표현되는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영훈의 노래를 듣는다. 툭하면 죽을 거라고 말하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퍼하므로 말로 하진 않고 노래만 듣는다. 살아야 갚을 수 있다는, 그러니까 살아서 우리 내일도 밥을 먹자는 그의 노래를 계속 듣는다. 괴롭지만 나는 살고 싶기 때문이다. 살아야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지가 불타는 것 같을 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양손에 파라핀 배스 찜질을 하고 손을 움직일 수 없으니 머리만 움직였다. ‘사람들은 죽고 싶을 때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죽거나, 죽지 않는다.     


보통은 죽지 않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그저 견딘다. 소리를 지르든 좋아하는 일을 하든 술을 마시든 모두 견디기 위해 하는 행동이다.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것이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이기 때문이다. 내가 통증 때문에 슬프진 않지만 괴롭다는 걸, 하지만 버티고 있다는 걸 글로 쓴다.     


사람들이 근황을 물어보거나 나의 증상에 대해 물으면 이걸 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프롤로그에도 썼던 말이지만, ‘읽어줄진 모르겠지만’ 글을 쓰기로 했다. 통증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에게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글을 쓴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이 손 저림의 시작이 한창 글쓰기에 매진하던 그때였다는 걸 안다. 그 시작이 문구점을 만나 지금의 이렇게 큰 괴로움이 되었다. 하지만 글을 쓴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섬유근육통의 단초가 된 그 사소한 통증의 시작에 침대와 대각선으로 배치된 텔레비전이 있었다. 나는 시간을 돌린다면 절대 그런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나를 후회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글을 쓴 나를 후회하지 않는다.     


3년 전 그 자취방에서 티비를 보던 내 모습도 이젠 후회하지 않는다. 무엇을 잘못해서 내가 섬유근육통이 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트리거였을 뿐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결국 내 몸은 무너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뭔갈 잘못해서 아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그런 생각을 한다. 나도 그렇게 원인을 찾아 헤맨 적이 많다.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은 아니다. 작가가 글을 많이 쓰고 문구점 사장이 디자인 작업을 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같은 행동을 해도 아프지 않은 사람과 아픈 사람이 존재한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누군가 아프다 하면 그 사람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주 맥 빠지게도 세상에는 내 행동에 원인이 없는 통증도 존재한다. 그저 몸이 고장 나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노화를 향해가는 유기체이므로.     




손이 아파 글을 맘껏 쓰지 못하는 건 슬프다. 하지만 아예 쓰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슬퍼질 것이다. 나는 내일도 살아갈 것이다. 살아서 고마움에 보답하고 살아서 갚을 것이다. 밥을 거르지 않고 먹을 것이다. 내일도 나랑 놀자며 같이 밥을 먹자는 이영훈의 목소리는 슬퍼하는 친구를 집 밖으로 끄집어낸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울의 우물에서 걸어 나온다.     


통증 때문에 슬프진 않다. 슬퍼지지 않기 위해 글을 쓰므로 나는 오늘도 내일도 무언가를 쓸 것이다.     


그러니 우리, 내일도.          



몇 번을 물어봐도
나의 대답은 내일도 나랑 놀자
같이 밥을 먹자
전화가 울려오면
반가운 너의 목소리 잘 지내니
그 후로도 우린 틈만 나면 본다

사랑해야 한다

이영훈 – 우리, 내일도 中 (곽진언 작사, 작곡)      

         

*사족 : 이영훈과 곽진언은 매우 막역한 사이다. 이 노래를 들으며 남편과 나는 툭하면 죽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둘 중 어느 쪽일지 항상 궁금해한다. 아마도 이영훈 일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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