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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Jan 02. 2021

당신의 몸을 살리는 쪽으로 걸으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별다를 것 없이 2021년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2020년을 작년이라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아직은 어색한 요즘입니다.


마지막 글을 남겼던 것처럼 저는 손 수술을 했습니다. 오른손이고, 손목터널 수술과 검지 중수수지관절 수술을 해서 아직 손글씨는 쓰지 못합니다.


검지 왼쪽의 뼈를 깎았어요

검지가 이렇게 큰 역할을 하는 줄 몰랐습니다.

타이핑도 많이 힘들어 핸드폰으로 쓰는 것만 가능합니다. (중지를 사용하거든요.)


그래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의 첫 목표는 2020년 내에 글을 완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을부터 손이 악화되어 그냥 날아가버렸죠. 작년은, 글을 쓰면서도 왠지 내내 조바심이 나는 날들이었습니다.


욕심이 많았기 때문이겠죠.


저는 두 달 후, 학교를 그만둡니다.

일생의 절반을, 내내 벗어나려고 했던 그 직업을 드디어 내려놓습니다.


솔직히 많이 불안했습니다. 손을 쓰지 못하게 되고 할 수 있는 건 생각뿐이니 불안한 생각만 밀려왔습니다. 곧 직업이 사라지는데, 저는 아직 정식 작가가 되지도 못했으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글을 완성할래도, 그런 마음으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다 이제야, 저는 그런 조바심을 모두 내려놓습니다. 질병기를 책으로 내는 첫 번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미 많으므로 물 건너감), 최대한 빨리 글을 완결해야 한다는 생각, 최대한 빨리 글을 정리해 출판사에 투고해야겠다는 생각을 모두 내려놓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는 것에 불안해하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수많은 밤들을 보내고 저는 문득 알게 되었습니다. 이 통증 연대기의 끝을요.


저는 글을 쓰고서야 비로소 통증의 원인이 저에게 맞지 않는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두 달 후, 정말로 저의 직업이 아니게 됩니다. 그러니 이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고, 저는 그 직업이 사라진다고 불안해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시간을 보내며 써낸 글들, 그 글들이 가리키던 방향, 저는 그쪽으로 걷기로 결심하였기에 더 이상 흔들릴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섬유근육통은 2018년 2월에 발병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신기하게도 19년 2월, 20년 2월에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아마 올해 2월엔 더 이상 뒤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커다란 파도에 밀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던 뼈아픈 과정을 다시 겪지 않을 것입니다.


제 글의 끝은, 아마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 2월에 대해 쓰는 것일 겁니다. 적어도 매년 작용하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냈다고 적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제야 저는 3년의 통증의 시간들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규 직업이 없는 삶은 조금 더 불안하겠죠.

죽이 잘 맞는 아이들과 즐겁게 대화하던 순간들을 그리워하겠죠. 매체에서 영어와 관련된 것을 보면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알려줄 생각을 하던 것을 멈춰야겠죠. 학교에 있던 것을 그리워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치면 마음이 잠시 쓸쓸해지겠죠.


그래도 지금까지 만났던 아이들만으로도 제 마음은 충분히 따뜻했노라고, 그것만으로도 저는 남은 생을 충만하게 살 수 있겠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걸 다 손에 쥘 순 없으니까요.

어쩌면 과분했던 사랑과 지지, 아이들과 보냈던 행복한 순간들은 그대로 마음속에 남기고 이젠 제 몸을 살리기 위한 걸음을 걷습니다.


모든 분들이 자신의 몸을 살리는 쪽으로 걸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병이 되지 않는 일을 하시길 온 마음을 다 해 바라봅니다.


어느새 와버린 이 새해, 모두 행복하세요.



+ 남은 이야기

(손은 회복기가 꽤 필요합니다. 글은 자필로 초고, 이후 타이핑하는 방식으로 쓰는데 지금은 두 가지 방법 다 어려워 통증기 연재는 손이 나은 후 재개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저에겐 글쓰기가 저 자신을 달래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병이 되지 않는 이 일을 저는 계속할 생각입니다. 글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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