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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Mar 12. 2021

쉽잖은 세상이지만 자유롭게

네가 되고 싶은 모습이 되면 돼

자유롭고 싶었다. 통증으로부터, 괴로움으로부터, 이 모든 바람과 생각으로부터.

내가 벗어난 그 일은 나를 다시 아프게 할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 가서 사직원을 썼다. 가장 아끼는 만년필을 가져갔다. 이제 괜찮다며, 아프지 않아서 그만두는 것이라며 웃어 보였다.

웃고 싶었다. 마지막 모습이라면 몇 년간 어느 때보다도 밝게 웃고 싶었다.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몸이 더 나빠져서 그만두는 것이라 생각해 나를 안타깝게 여기지 않기를 바랐다.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용기를 양 손 가득 쥐고 학교로 향했다. 손 수술 후 첫 운전이었다. 가는 길엔 이매진 드래곤스의 ‘Walking the wire’를 들었다. 외줄 위에 서 있지만 나는 더  높이 올라갈 거라고. 그리고 나는 내게 다가오는 것들을 감수하겠다고.

We’re walking the wire
We’re gonna be higher up
And we’ll take what comes, take what comes.

그날은 많이 웃었다. 모든 교무실을 돌면서 아직 떠나지 않고 학교에 남아있는 몇몇의 아는 사람들에게 나의 문구점과 작가 도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와 그들은 모두 나의 앞길을 축복했다.

그리고 차에 타면서부터는 많이 울었다. 생각해보니 그건 마지막 퇴근길이었고 어느 순간 신호등이 뿌옇게 번졌다. 나는 그동안 참 수고했다.




나는 요새 조금 자유로워지는 꿈을 꾼다.
그건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꿈,
내게 통증을 야기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꿈, 내가 자유로워지는 꿈.
병이 되는 것들은 멈추고 병이 되지 않는 곳으로 향하는 꿈.

인간이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 그건 아마도 절대로. 우린 그럴 수 없어.
난 이 모든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학교를 그만두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복잡한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잖은 세상이지만 어딘가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쪽으로 걸을 수는 있을 것이다. 끝에 가 닿을 순 없어도 주저앉기보단 날아가는 쪽으로 희망의 끈을 던져 볼 순 있을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용기였다.


자기야 자유롭게
쉽잖은 세상이지만
알잖아 나는
언제나 네 편인 걸
그러니 자유롭게
네가 되고 싶던 모습이
되면 돼
자유롭게
저 멀리

곽진언 -자유롭게

2021.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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