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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Apr 02. 2021

짧았던 나의 봄 소풍

올해의 처음과 마지막 벚꽃

그저 병원에 다녀온 것뿐인데 잠깐 깬 새벽부터 온몸이 욱신거려 걷기가 어려웠다.  


- 소풍 갔다 온 다음 날 같아.


통증으로 평범한 외출이 내게 큰일이 돼버린 이후, 혹은 외출도 하지 않았는데 절인 배추의 강도가 심해진 경우 난 내 상태를 그렇게 표현했다.


다리가 너무 아프고 천근만근이야, 몸이 너무 무거워, 몸에 힘이 없어, 온몸이 쑤셔.

이런 증상의 나열로는 말만 길어질 뿐 내 상태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도 쉬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 쉽진 않더라도 어렴풋하게나마 형체가 손에 잡히리라는 기대. 나는 그렇게 내 상태를 뭔가에 비유하기 시작했다.


나의 전직, 교사에게 소풍을 다녀온 다음날이란 그야말로 안 아픈 곳 없이 모든 에너지가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였다. 이젠 더 이상 일로 소풍을 가지 않지만 자주 그다음 날의 상태를 느낀다.





한낮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선글라스를 썼는데도 빛이 렌즈를 뚫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편두통 치료를 위해 머리에 보톡스 주사를 맞기로 한 날이었다. 머리에 바늘을 꽂는 것보단 사방에서 날아오는 선거 유세의 크고 거대한 소리, 수많은 차와 사람들의 소리, 높고 강한 빛이 무서웠다.


병원까지는 택시를 탔다. 올해 봄꽃이 핀 후 첫 외출이었고, 나는 노랗고 하얀 꽃들이 가득한 풍경이 반갑고 생경했다.


선글라스 너머로 봄을 훔쳐보았다. 왠지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이 봄에 속해있지 않고 몰래 바라보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눈부신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하진 못하고 아주 가끔 궁금함을 참지 못해 선글라스를 조금 내려 빼꼼히 쳐다보았다.


너무 눈이 부셔 황급히 다시 올리고, 꽃이 가득한 길에 들어서면 다시 잠깐씩 빼꼼거렸다. 눈부시고 아름다운 봄이었다.  




하루 종일 앓았다.

그건 나의  소풍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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