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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Apr 21. 2021

필요한 건 건강

그거면 돼요

잘 지내셨어요?


건강검진 일주일 뒤에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가 물었다.


그냥 아프게 살았어요.


인사치레라도 잘 지낸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요즘이었고, 이곳은 병원이니 몸 상태에 관해서는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는 곳이라 그랬다. 잘 지냈냐는 말에 잘 못 지냈다고 말했다.


검사 결과는 언제나 그렇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상태는 나빴고, 그는 왠지 이야기를 이어가길 어려워 했다.


두통이 계속 있으세요?


네. 지금도 있어요.


요새 약은 드세요?


나는 나의 증상과 시도했던 치료법을 담담히 이야기했고, 그는 안타까워했다. 앞에 앉아 있는 환자는 아프고, 자신은 의사이지만 해결책을 주지 못하니 그것이 답답했을까. 그가 검사 결과를 계속 들여다보며 스크롤만 연신 굴려도, 지난주에 이미 들었던 내 증상에 대해 다시 물어보아도 나는 답답하지 않았다. 이곳에 답을 찾으러 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언제나 그렇듯 답은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었으니까.


보통 이럴 때 경력이 많거나 시간이 많지 않은 의사들은 의례적인 말로 이야기를 잘 마무리짓던데 그는 그런 것이 아직 어려운 것 같았다. 검사 결과에는 이상이 없지만 오랫동안 아파 온 눈 앞의 환자에게 이제 무어라 말해야 할지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아, 필요한 거요?

건강이요.



아무도 줄 수 없는 것을 말하고 그와 나 자신에게 찰나의 웃음을 주었다. 웃으라고 하는 농담이면서 그것이 100프로 진심이라 사실 농담은 아닌 말이었다.




병원을 나오니 햇살이 유난히 밝았다. 눈 부시듯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날이 너무 좋아서 왠지 걷고 싶었다. 저 멀리 보이는 다이소까지 한 번 걸어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살랑이는 바람을 가르고 걷다가 이내 한계에 도달해서 다시 병원 앞으로 돌아왔다. 걸은 건 겨우 2분 남짓일까. 봄 산책을 포기하고 집으로 가는 택시를 불러 탔다. 예상 택시비를 보니 두 달 후에 콜레스테롤 약을 받으러 또 와야 할 텐데 여긴 집에서 너무 먼 것 같았다. 집에서 가까운 내과를 검색해보다 그럼 오늘의 의사는 그만 보게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택시는 빠르게 달렸고, 머리가 어지러워 잠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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