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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Mar 09. 2021

창작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마음

1인 문구점 물고기의 초조한 꼬리짓

창작자로 사는 것은 어렵다. 한 번에 마법처럼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몇 번이고 실패하고 고치고 버리고 다시 만들길 반복해야 한다. 그 창작물로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라면 더 골치가 아프다. 분명 사주에선 나에게 항상 즐기듯 도전하라고 했는데 이것이 상품성이 있을 것인지 없을 것인지 사람들이 좋아할 것인지 아닌지를 고려해야 하기에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 즐기듯 도전했다가 작년에 돈을 많이 날려 먹었기 때문에도 그렇다. 종이는 인쇄라도 해 볼 수 있지 이놈의 마스킹테이프는 도무지 예측을 할 수가 없다. 하 마스킹테이프. 마테 마테마테 모테모테 못해.

결국 나는 기존 디자인의 절반을 버리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의 성과는 절반을 잃는 것이었다.   

   

몬라와 몬스를 한 번씩 살펴보고 물을 칙칙 뿌려준 후 점심때 남긴 생라면 쪼가리를 집어먹으며 생각한다.

‘난 왜 이걸 하고 있지? 왜 하지? 그만둘까? 근데 학교도 그만뒀잖아. 직장도 때려치우고 사업도 때려치운다고?’

절레절레. 우적우적. 하지만 아무도 내가 문구 장인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문구계에 큰 획을 그을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길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하는 거다. 내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난 왜 괴로워하고 있나. 근데 창작이 마냥 즐거울 수가 있어요? 사주 아저씨, 즐기듯 도전하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거죠?

(몬라는 몬스테라 라지의 애칭, 몬스는 몬스테라 스몰의 애칭이다.)     


이게 다 작년에 큰 판단 착오로 마테 제작비를 많이 날려 먹었기 때문이다. 내가 저지른 게 있어 그건 만회하고 싶고, 만회하고 싶으니 자꾸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잘하고 싶어 진다. 음악을 할 때도 몇 달을 끌어도 완성이 안 되는 노래는 영원히 음성 메모로만 남았다. 그냥 정말 뭘 만들겠다는 부담 없이 촤르르 생각난 것은 노래가 되었다. 그러니까 작년에 처음 도전할 땐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는데 지금은 각 잡고 수익을 내려니 더 어려워졌다는 거다. 아니 근데 돈을 벌긴 벌어야 되는 거 아닌가. 혼자 하는 스티커 잔치도 아니고 명색이 사업인데.      


오늘 아침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창작 사업자의 불안이다. 신상을 만들어야겠고 어떻게 할진 모르겠고 결국 내 손으로 다 해결해야 하는 자의 초조함이다. 아무도 나를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데 나만 혼자 초조하다. 다른 문구점에선 신상이 마구마구 나오는데 나만 혼자 아프고 지지고 볶느라 몇 달간 신상을 못 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메링 천천히 해도 돼.’ 남편은 말한다.

‘어보 그러다 시류에 뒤떨어지면 어떡해?’ 조급함이 일상인 내가 말한다.

‘그럼 그때 시류에 맞는 걸 만들면 되지.’ 조급함이라곤 몬스의 새순만큼도 키우고 있지 않은 남편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러면 나는 어보는 문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며 볼멘소리를 내곤 2번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2번 방은 나의 작업방이다.)     


사실 나를 재촉하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신상이 늦게 나와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주 조금 있을 수도 있지만 세상은 넓고 멋진 문구들은 넘쳐나기에 별문제 없이 살아갈 것이다. 문제는 내 마음속에만 있다. 마음을 놓고 욕심을 버리고 느리고 여유로운 여행자가 될 것인가 그냥 난 대로 일 초에 꼬리를 오백만 번 휘적거리는 물고기처럼 살 것인가.   

   

무리하지 말자고 생각한다. 나의 속도로 가자고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정말로 이놈의 몸이 여기저기 다 아파서 조금만 무리를 해도 긴 시간 앓으며 쉬어가야 하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살아보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건 모두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손으로는 그 문장들을 쓰고 타이핑하고 이리저리 배치해 스티커와 마테를 만들었다. 인쇄를 하고 자르고 찢어보고 얼마간 노려보고 다시 뽑고 또다시 뽑으며 종이 쓰레기를 만들어내길 반복했다. ‘당신의 속도로 가세요.’ ‘무리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손에서 모두 내려놓으세요.’ ‘숨을 크게 들이쉬어보아요.’ 같은 문장을 쓰면서 앉은자리에 다섯 시간째 그대로 있는 나를 바라본다. 모순이 과해서 모순 물고기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입을 뻐끔댈 때마다 모순이 뻐끔뻐끔 나온다. 모순. 모순.

    

하지만 내가 쓰는 단어와 문장들은 정말로 내가 추구하는 바가 맞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자꾸 뱉어내는 말이 맞다. 제발 그렇게 살고 싶은데 못 하고 있어서 이젠 좀 알아들으라고 자꾸자꾸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문구로 만들다 보니 정말 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 사람이 되는 것은 못 하게 되었다.    

 

그래도 조금만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 조금만 덜 급하게. 조금만 덜 불안해하고 조금만 덜 초조하게. 아무도 재촉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내 문구점이 사라져도 아쉬운 사람 아무도 없... 내가 아쉽구나. 나는 내 문구점이 사라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었다. 나는 나의 문구점을 살리고 싶은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이었구나. 그런데 그걸 좀 천천히 하는 건 안 되겠니?     


성질 급한 물고기가 이러다 숨 쉬는 것도 잊을까 봐 나는 오늘도 ‘take it slow’라고 적는다. 느리게 헤엄치는 것 같은 여유로운 물고기도 한 마리 그려 넣는다. Take it slow, take it slow. 수영의 고수들은 적은 수의 스트로크에 더 길게 덜 힘들게 물을 가로지른다. 계속 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거다. 찾자. 어떻게든. 그게 뭔진 지금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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