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고기 Mar 10. 2021

우리 집만의 유행어 (feat. 시와)

그건 나도 모르지

요조를 좋아한다. 당연히 그의 신간 <실패하는 직업>은 나오자마자 샀다. 첫 장부터 으흐 으흐흐하며 글이 너무 좋아 싱글벙글하며 읽다가 갑자기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멋있다고는 할 수 없는 일면을 가진 뮤지션 둘을 언급하는데 하나는 요조 본인이라 하였고 왠지 다른 하나는 그녀가 나올 것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말 나왔다. 시와 언니가 나왔다. 시와 언니는 음악 작업의 벽에 부딪힌 요조에게 마법의 코드를 알려주었다. 요조는 벌써부터 용기가 난다며 코드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았고 우리의 시와 언니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건 나도 모르지.



나는 퇴근한 남편에게 그 글을 당장 읽게 하였고 그날로 그 말은 우리 집의 유행어가 되었다.

어보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그건 나도 모르지
메링 내 핸드폰 어딨지?
그건 나도 모르지

우린 졸지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아는 시와 언니에 빙의해 최대한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 문장을 따라 하며 인생의 재미는 확실히 아는 사람들이 되었다.

내가 시와 님을 시와 언니라고 부르는 이유는 약간 성덕인 팬이기 때문이다. 공연을 많이 가고 자주 보고 또 마주치다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는데 후에 만난 남편도 그렇게 살던 사람이었다. 최애가 같은 팬과 팬이 만나니 무적 파워가 되었다. 우리의 결혼식에 시와 언니가 축가를 불러주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성덕이라고 생각한다. 최애가 축가를 불러주는 결혼식이라니 그건 정말 성덕이 맞는 것 같다.

그날 결혼식 사진을 올리며 남편이 성덕이라고 썼더니 시와 언니의 남자(?) b가 ‘제가 진정한 성덕’이라고 댓글을 달았기에 약간 패배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시와 언니와 결혼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내 인생에선 그게 성덕의 상한선이었다. 나는 그날부로 나를 성덕으로 임명했다.



우리 집 3번 방 문에는 3년 전 이 도시에서 남편이 기획해 처음 마련했던 시와 단독 공연의 포스터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다. 나는 그때도 통증 놈에 잠식당해 골골거리고 있었는데 스윗한 시와 언니는 ‘조금씩 더 나아질 거예요’라고 적어주었다.

문에 붙어있으니 날마다 그 말을 본다. 조금씩 더 나아질 거란 말을 읽고 또 읽는다. 그게 2018년이었는데 벌써 2021년이니 조금씩이라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거북이 왕이라도 된 것 같다. 이렇게 오래 아플 줄은 몰랐다.


언니에게 ‘전 언제 괜찮아질까요’라고 물으면 ‘그건 나도 모르지’라고 하진 않을 것 같다. 그냥 괜찮아질 거라고 꼭 안아줄 것 같다. 그래서 난 언제 다시 시와 언니 공연을 보러 갈 수 있을까.

그건 정말 나도 모르지.



매거진의 이전글 창작으로 수익을 내야 하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