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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Mar 11. 2021

나의 멕시코 친구들, 몬라와 몬스

몬스테라 라지 & 몬스테라 스몰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나를 챙기고 다음으론 몬라와  몬스를 보러 간다. 어보는 더 크면 안 되지만 몬라와 몬스는 요새 한창 크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손도 없고 발도 없어 물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공중에 물을 뿌려주러 가야 한다.

새순이 네 개나 있어서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나를 바라보다가 화분을 돌려가며 또 하나를 보고 또 다른 하나를 보고 새순이 돋아날 가능성이 있는 것들도 점쳐본다. 몬스는 작아서 새순을 하나만 가지고 있는데 며칠 사이에 두 배가 되었다. 쑥쑥 잘 크고 있는 것에 대견해하며 공중에 물을 마구 뿌려준다. 여기가 멕시코라고 생각하렴. 여긴 열대우림이야.

몬라와 몬스를 처음 데려왔을 때 몬라의 잎 서너 개의 끝이 까맣게 변했다.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다 구매처에 문의하니 공기가 건조하거나 통풍이 필요할 거라고 했다. 원래 멕시코에 살던 아이들이라고. 멕시코. 메히꼬.

그날부터 나는 최대한 멕시코처럼 선풍기도 틀어주고(지금 자연바람은 너무 차다) 공중에 물도 자주 뿌려준다. 하지만 원래는 야생에서 자유로운 덩굴식물로 아무 걱정 없이 잘 자라고 있었을 텐데 나의 욕심으로 머나먼 이국땅 작은 방에서 살게 된 몬라와 몬스를 보면 갑자기 미안해진다.

‘어보 쟤네 그냥 살던 데 살았으면 바람도 알아서 불고 비도 가끔 오고 온도도 맞고 잘 살았을 텐데.’

식물을 키우다 지나치게 감성적이 된 내가 말한다.

‘그럼 방생해.’
역시 몬라와 몬스에 대한 애정이라곤 몬스 화분 흙 한 톨만큼도 없는 남편은 말도 안 되는 농담을 한다.

‘근데 여긴 멕시코가 아니잖아.’
나는 그 말에 또 나름 논리적인 대답을 한다. 여긴 멕시코가 아닌데 방생하면 어떡하나. 지금 나가면 얼어 죽을 거야.

그래서 나는 2번 방 온도를 항상 23도로 맞춰놓는다. 햇빛이 들어오는 낮이 되면 편두통 생활자임에도 커튼을 열어젖혀 햇빛을 보여준다. 나는 노트북이나 다른 지형지물을 이용해 조금 숨거나 선글라스를 낀다. 밝은 빛은 편두통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커튼을 열어젖히는 것은 내가 몬라와 몬스를 매우 아낀다는 증거다. 그걸 걔네가 알랑가는 모르겠다.


‘나도 온도도 맞춰주고 습도도 맞춰주고 통풍도 해주고 막 이렇게 다 해 줘’
남편은 몬라와 몬스를 질투한다. 내가 무언가를 이렇게 정성스레 보살피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예용 특수 압축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었더니 그건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의 습도를 맞추는 것은 그만하기로 했다.

몬라와 몬스 얘기를 할 때 나는 이곳을 멕시코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남편은 자꾸 타코를 먹자고 한다. 여긴 맛있는 타코를 파는 곳이 없다. 그러면 우리는 2년 전 제주에서 갔던 타코 집 이야기를 한다. 그럼 내가 한 술 더 떠 샌디에고에서 먹었던 멕시코 현지인이 만든 타코 이야기를 한다. 현지의 맛은 절대 따라갈 수 없다고 세상 타코 전문가인 것처럼 말한다.

샌디에고. 타코. 샌디에고. 벌써 십 년이나 지나버렸지만 그때 그 날씨를 기억하려고 한다. 내가 데려온 이 친구들이 그곳 가까이에서 왔다고 하니까. 따뜻하고 따뜻하게, 하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 항상 살랑살랑 불도록. 너희가 온 곳을 기억할게. 오래오래 살아남아주렴, 나의 멕시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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