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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Sep 14. 2021

시간은 반드시 흐른다

for sure

더위가 무서워 산책 트래커에 동그라미를 그린   달도   날이었다. 잠깐  밖에 나갔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여름이 지났다.



편두통의 낌새가 보이면 재빨리 약을 먹었다. 분명히 시작할 때 먹으면 금세 가라앉는다고 했는데, 두통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두통 일기에 약 복용, 효과 없음이라고 체크하는 날들만 쌓여갔다.


그러다 어떤 날은 약을 먹은 후 두어 시간 후에 일어나 움직일 수 있었다. ‘약효가 있는 것 같다?’라고 적었다.


‘몸이 좋아지면 치료에 대한 반응도 더 잘 나타날 수 있어요.’

네 달 동안 먹던 약이 갑자기 효과를 보여 놀랐다고 하자 그가 덤덤히 말했다. 그럼 나는 지금 나아지고 있는 걸까?


문득 되짚어 보니 두통약이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 즈음이 내가 운동을 일주일에 두 번 나가기 시작한 때였다.


작년에는 하루를 가고 두 달을 쉬고 또 몇 번을 나가다 세 달을 쉬었다. 일 년 동안 채 열 번도 가지 못했다. ‘일주일에 두 번 올 수 있게 되면 몸이 나아지기 시작합니다.’ 그가 말했던 그 시기가 이렇게 왔다.


일주일에 정기적인 외출을 두 번이나 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날마다 홀로 통증과 싸우고 있었지만 운동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라고,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와야 한다고 그가 말했고, 나는 그 말만은 지키려 노력했다. 일 년에 열 번을 나가다 일주일에 두 번을 나갈 수 있게 된 내게 그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다시는 뒤로 걷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나를 뒤로 걷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일을 해보았다. 조금 괜찮으면 조금만 할 것을, 나는 언제나 그랬듯 미련하게 한계점을 넘었다. ‘치료만은 받으러 가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한 가지 생각만 잡고 센터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머리가 어지럽고 욱신거려 걷기가 어려웠다.


‘좋아졌다 오늘처럼 쇼크가 오면 전보다 더 아프게 느껴져요.’

그래도 몸이 좀 괜찮아졌다고 뭘 하려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길래 자책감은 덜 수 있었다. 누구나 다 그렇다고, 몸이 조금 나아지면 사람들은 뭔갈 하고 싶어 한다고.


집에 돌아와 약을 먹고 바르게 누웠다. 그러다 침대에서 일어났고 걷기도 하고 식탁을 치우기도 했다. 분리수거를 하러 잠깐은 나가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잠깐의 걸음에 선선해진 저녁 바람을 맞았다.


여름이 이렇게 지나갔구나. 여름 후엔 가을이 오고 편두통 발작에도 끝이 있어 이렇게 바깥바람도 쐬는구나. 목소리들이 들렸고 사람들은 집을 향해 걸어갔고 있었다. 나는 그 찰나에 어떤 영화의 느린 장면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시간은 반드시 흐른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 같아도, 혹은 뒤로 걷고 있는 것만 같아도 시간만은 충실히 앞으로 흐른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나는 겨울의 나와 또다시 돌아올 내년 여름의 나를 떠올렸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반드시 나아져 있을 것 같았다.

2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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