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ure
더위가 무서워 산책 트래커에 동그라미를 그린 지 한 달도 더 된 날이었다. 잠깐 집 밖에 나갔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여름이 지났다.
편두통의 낌새가 보이면 재빨리 약을 먹었다. 분명히 시작할 때 먹으면 금세 가라앉는다고 했는데, 두통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두통 일기에 약 복용, 효과 없음이라고 체크하는 날들만 쌓여갔다.
그러다 어떤 날은 약을 먹은 후 두어 시간 후에 일어나 움직일 수 있었다. ‘약효가 있는 것 같다?’라고 적었다.
‘몸이 좋아지면 치료에 대한 반응도 더 잘 나타날 수 있어요.’
네 달 동안 먹던 약이 갑자기 효과를 보여 놀랐다고 하자 그가 덤덤히 말했다. 그럼 나는 지금 나아지고 있는 걸까?
문득 되짚어 보니 두통약이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 즈음이 내가 운동을 일주일에 두 번 나가기 시작한 때였다.
작년에는 하루를 가고 두 달을 쉬고 또 몇 번을 나가다 세 달을 쉬었다. 일 년 동안 채 열 번도 가지 못했다. ‘일주일에 두 번 올 수 있게 되면 몸이 나아지기 시작합니다.’ 그가 말했던 그 시기가 이렇게 왔다.
일주일에 정기적인 외출을 두 번이나 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날마다 홀로 통증과 싸우고 있었지만 운동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라고,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와야 한다고 그가 말했고, 나는 그 말만은 지키려 노력했다. 일 년에 열 번을 나가다 일주일에 두 번을 나갈 수 있게 된 내게 그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다시는 뒤로 걷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나를 뒤로 걷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일을 해보았다. 조금 괜찮으면 조금만 할 것을, 나는 언제나 그랬듯 미련하게 한계점을 넘었다. ‘치료만은 받으러 가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한 가지 생각만 잡고 센터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머리가 어지럽고 욱신거려 걷기가 어려웠다.
‘좋아졌다 오늘처럼 쇼크가 오면 전보다 더 아프게 느껴져요.’
그래도 몸이 좀 괜찮아졌다고 뭘 하려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길래 자책감은 덜 수 있었다. 누구나 다 그렇다고, 몸이 조금 나아지면 사람들은 뭔갈 하고 싶어 한다고.
집에 돌아와 약을 먹고 바르게 누웠다. 그러다 침대에서 일어났고 걷기도 하고 식탁을 치우기도 했다. 분리수거를 하러 잠깐은 나가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잠깐의 걸음에 선선해진 저녁 바람을 맞았다.
여름이 이렇게 지나갔구나. 여름 후엔 가을이 오고 편두통 발작에도 끝이 있어 이렇게 바깥바람도 쐬는구나. 목소리들이 들렸고 사람들은 집을 향해 걸어갔고 있었다. 나는 그 찰나에 어떤 영화의 느린 장면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시간은 반드시 흐른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 같아도, 혹은 뒤로 걷고 있는 것만 같아도 시간만은 충실히 앞으로 흐른다.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나는 겨울의 나와 또다시 돌아올 내년 여름의 나를 떠올렸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반드시 나아져 있을 것 같았다.
2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