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 경보!
편두통 경보가 발령되었다. 그건 어떻게 아냐면, 그냥 몸이 안다. 편두통이 하루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다. 이틀 연속 이어지면 그냥 한 번이 아니라 편두통 경보가 내려진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그리고 삼일 째 되는 날, 그저 샤워를 하고 나왔을 뿐인데 어질, 뇌가 욱신거린다면 게임은 끝났다. 편두통 경보가 발효되었다.
편두통 경보는 호우 경보와 같이 편두통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기간에 발효된다. 나의 경우 기간은 일주일 정도, 시작은 중등도의 편두통 유발 자극으로 시작된다. 첫날의 편두통은 그래도 이해할 만 하단 소리다. 둘째 날부턴 낮은 강도의 유발 자극만으로도 바로 편두통이 시작된다. 셋째 날 쯤되면 말도 안 되는 자극으로도 편두통이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너무 크게 켰는가? 편두통이 나타날 수 있다. 이쯤 되면 또다시 지겹고 고약한 편두통 경보가 발효되었음을 알아챌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머리의 움직임을 줄이고 빛과 소리에서 나를 차단한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면 그 상태에서 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편두통 경보가 발효된 시기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예민해서 아주 작은 자극에도 뇌가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내가 대체 뭘 했다고 이 정도 가지고 이래? 라며 억울한 마음이 들겠지만 괜한 감정소비다. 그냥 자리에 느리게 누워(이 와중에도 절대 빠르게 누워서는 안 된다) 숨을 고르고 뇌를 진정시켜야 한다.
편두통이 일주일씩 찾아오길 바란 적은 없다. 그저 뒤돌아 생각해보니 유독 끊이지 않게 편두통이 내내 이어지던 기간이 여기저기서 발견되었을 뿐이다.
몸을 관찰하는 것은 나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꾸준히 나의 편두통 일수와 강도를 모니터링한 덕분에 나는 어떤 패턴을 읽어내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렇게 내 몸은 어처구니없게도 일주일 정도 편두통에 처박히는 편두통 기간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 처음이 두려움이었다면 두 번째에는 첫 번째 경험이 그냥 우연이 아니라 후에 유용할 데이터였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때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일주일이면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이 편두통 경보는 곧 효력을 다할 거라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매일을 버텼다. 뭔가를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서 까만 방에 누워 뇌에서 나는 심장소리를 들었다. 내 심장은 거기에 없는데 왜 머리가 두근두근 거리는지 그 리듬은 얼마나 내 머리를 조여오는지 생각했다. 병원에서는 약물과용 두통이 되지 않으려면 편두통 약을 한 달에 10개 이하로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주에 벌써 알모그란을 4알이나 먹었다. 1월이 시작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몸은 희망과 절망이다. 나는 통증이 옅어져 감을 느끼며 희망을 갖고 겨우 점심 준비를 조금 했을 뿐인데 편두통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을 보고 절망한다. 난 주로 희망을 가지려는 쪽인데 편두통이란 놈은 나를 자꾸 겸손하게 만들려는 비밀조직 특수공작요원 같다. 내가 조금 희망을 가지고 뭘 좀 해볼까 싶으면 나를 자리에 털썩, 어디 좀 둘러볼까 싶으면 또 털썩 주저앉힌다. 무언가를 하는 것은 나에게 나쁜 선택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이 최선이라 느껴진다. 편두통이 있으면 나는 항상 그렇게 느낀다.
연초를 편두통 경보와 함께 요란하게 시작했다. 끝까지 방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두렵다. 그 끝이 이 편두통의 끝인지 내 인생의 끝인지 알 수 없지만 언젠간 끝이 나길 바란다.
아프지 않은 끝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