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잔의 술을 즐기던 때가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가까운 이들과 조금 더 오래 그 분위기에 취하고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편의점 맥주를 사서 여유롭게 혼술을 즐기던 때가. 그런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모두 과거형이다.
몸이 아파졌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이후에도 나는 그 아픈 걸 잊어 보겠다고 어리석게도 몇 번 음주를 선택했다. 하지만 나는 아프기 전에도 숙취가 심했고, 몸이 안 좋아지니 더 좋지 않았고, 술을 마셔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완전히 끊게 되었다.
술을 잘 마시지는 못해도 술을 마시는 분위기, 술을 마시며 정신이 느슨해지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가끔 그것이 그리웠다. 다 같이 모이진 못하더라도, 밤에 책을 보면서 맥주캔을 하나 따는 것만으로도 작고 확실한 행복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크고 분명한 통증이 될 것이다. 몸이 나으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에 떡하니 술 마시기를 올려 갔더니 필라테스 선생님은 단호하게 X라고 말했다. 그건 안 했으면 좋겠다고, 평생.
알고 있다. 술은 백해무익하며 술을 마시면 다음 날 머리가 아프다. 몸이 천근만근이 되어 하루를 버리게 될 것이다.
근데 버리면? 하루만 버리고 다음날부터 다시 사는 건? 작고 확실한 행복 하루 느끼고 하루 참회하고 다시 삶을 사는 건?
하루를 버리는 것이 내 마음대로 가능할 리가. 내가 버리는 것은 하루가 아니라 한 달이 될지도 모르고, 석 달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내 몸은 망가졌다. 어떤 멕시코 의사의 말을 빌어 ‘적대적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 복합 시스템의 실패’다. 실패한 몸을 고친다고 0이 되진 않는다.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바른 자세, 양질의 수면, 클린 한 식단이 권장되는데 술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있을 리가.
평화로 향해 가는 요즘이 좋다. 다시 최악의 통증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파도가 높아져 배가 뒤집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 경로를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나라도 냉정하게 거절한다.
늦은 밤 딸깍, 경쾌한 소리가 그리울 때면 상상만 한다. 이미 많이 해 봐서 다 알잖아, 굳이 안 마셔도 뭔지 알 수 있잖아, 라며 나를 달랜다. 나는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게 된 지금이 얼마나 감격에 넘치는 순간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것에 투정을 부리지 않는다.
그때 해봐서 이미 좋았고 행복했고 예전의 기분을 잊지 않을게.
술은 이제 마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