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다. 매일 밤 약을 아홉 개씩 먹고 자주 깨는 새벽을 메모하고 매일 아침엔 따뜻한 물 한 잔을 챙겨 먹는다. 엄마는 가끔, 아니 자주 통화할 때 너 그렇게 아파서 어떡하니 라고 하시는데 나는 어쨌든 괜찮아지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말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분명히 작년보단 올해가 괜찮고 어제보단 오늘이 괜찮다. 여전히 고향에 가지 않거나 주로 집에만 있는 내가 항상 똑같이 매일 안타까운 상태로 보이겠지만 나는 아주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
내가 느끼는 나아짐이란 매우 사소하다. 어제 책을 15분 읽었는데 오늘은 20분 읽을 수 있는 것, 택배를 뜯고 박스까지 정리해 둘 수 있는 것. 음식을 먹고 식탁까지 치울 수 있는 것. 그런 것을 못하던 때가 있었으니 지금의 나는 그때보단 나아졌다.
몇 달 동안은 두통에 시달릴 때 노래 가사 한 줄에 매몰돼 있었다. ‘내가 사라졌으면 내가 사라진다면 처음부터 이 자리에 없었던 듯이’
그저 사라지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포기하진 않았다. 모든 상황이 좋지 않아도 나는 내가 나아지기만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노래의 다른 끝을 붙잡고 있었다. ‘열심히는 살고 있어 이렇게 살다 보면’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저 나에게 점심을 먹이고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자주 쉬는 일만을 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것이 나의 열심이었다. 내 몸의 소리를 긴밀하게 들으며 무리하지 않는 것.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 일상에 가장 필요한 우선순위를 골라내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재활 필라테스를 가는 날은 웬만하면 에너지를 전혀 쓰지 않고, 가지 않는 날은 조금 더 독서나 다이어리 쓰기에 몰두하는 것. 그것이 나의 열심이었다.
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몸의 소리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글씨를 쓸 때 자세를 자주 고쳤고 책을 읽다가도 여기서 멈춰야 해, 싶으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를 준비할 땐 움직임을 최소화할 수 있게, 너무 빠르지 않게 천천히 움직였다. 최선을 다 해 느리고 낮게 살았다. 그러는 사이 여름,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엊그제부턴 저녁을 먹을 때 거실 형광등을 켜기 시작했다. TV의 밝기도 조금 높였다. 머리를 움직여야 하는 스트레칭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다. 편두통 치료를 위해 맞은 보톡스 주사는 다행히 늦게나마 효과가 나타나는 듯 하고 남은 편두통 약 개수를 헤아리며 불안해할 일은 없게 되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아직 약이 충분하다.
나는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다. 겨울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이 겨울을 담담하게 보낼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