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기운이 일주일째 가시지 않는다. 열은 38도를 넘지 않고 감기 증상은 없다. 아프다고 병원에 가면 그럴 땐 꼭 체온이 낮게 측정돼 매번 양치기 소년이 되는 기분이다. 비싼 수액을 맞고 집에 돌아와 얼마 되지도 않아 얼굴이 뜨거워졌다. 열이 난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체온계로 열을 재면 37.4. 병원에 갈 때마다 열이 낮게 나오는 건 찬 바람을 쐐서 일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이유는 모르겠다. 병원에서 보기엔 미열이고 나에겐 전혀 미미하지 않은 열이다. 나는 카멜레온이라도 되는지 37.0만 되어도 체온 변화를 알아차린다. 어, 열나네, 쉬어야겠다.라고.
나는 내 몸에 대해서 안다. 아니 모르겠다.
몸이 아픈 이후 가장 미스터리였던 것은 이렇게 가끔씩 턱 하고 등장하는 몸살 시즌이었다. 이유가 매번 같진 않았지만 몸이건 마음이건 좀 무리를 하면 몸살이 시작되었다. 열은 평균적으로 37.5. 몸엔 힘이 없고 축 늘어진 상태. 어떤 몸살약, 해열제도 유효하지 않다는 게 특징이었다. 지난 4년간은 늘 그랬다.
휴직 미션을 끝내고 돌아온 날이었다. 20년 2월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살이 시작되었다. 독감인가, 싶어 독감 검사도 두 번이나 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동네 내과에 가 피를 뽑았다. 무언가 의심되는 것이 있다고 나를 대학병원으로 토스했는데, 대학병원 감염내과에 가 다시 피를 여러 통 뽑고 보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 기간 내내 나는 열이 났고, 온몸에 기력이 없었다. 감염내과에선 나를 다시 류마티스내과로 토스했다. 이미 일전에 섬유근육통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니 그렇게 됐다.
또 피를 여덟 통쯤 뽑았다. 나는 손가락이 붓지도 않고 뼈마디가 아프지도 않았다. 류마티스 질환은 아무리 봐도 아닌데. 그냥 나는 발열과 몸살이 멈추지 않아 온 것뿐인데.
피검사의 결과를 들으러 갔다. 모두 정상이라고 했다. 난 한 달째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뭐가 정상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섬유근육통 증상으로 보입니다.
아니 그런데 의사 양반, 내가 그 진단으로 이미 2년을 아픈 경력잔데 말이야, 이런 식으로 아픈 적은 없었거든. 지금 나는 마치 독감에 걸린 것처럼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겠는데 이것도 섬유근육통이라는 건가?
그런 요지의 질문을 던졌다. 의사는 그렇다고 답했다.
진료실을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남편이 결과를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래. 섬유근육통이래.
내가 이렇게 아픈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 섬유근육통이라는 단어가 모두 동일시되는 게 싫었다. 아니 저 이렇게 아픈데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아무것도 아니었다. 피검사에 수치로 족적을 남길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한 달을 앓았고 재활운동을 중단하고 휴직기간을 늘렸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몸살 시즌은 종종 찾아왔다. 시국이 이래서 코로나 검사도 여러 번 받았다. 물론 다 헛수고였다.
이번 몸살 시즌이 시작된 이유는 안다. 사람이 너무 그리워 반년만에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켜는 바람에 무리를 했다. 다음 날엔 문구 재고 정리를 아주 조금 했는데 그 두 가지 일이면 내 몸은 작동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펑. 엔진이 터졌나 몸이 맥을 못 추네.
지난번 몸살은 작년 10월이었다. 다이어리를 찾아보니 일주일 정도 아팠다. 그런데 20년 2월엔 한 달이나 아팠지 않은가. 데이터가 있으니 조금 불안해진다.
나는 내 몸에 대해서 안다. 이만큼이나 안다. 오래 아팠고 많이 기억한다. 하지만 모르겠다. 나는 내 몸에 대해서 모른다.
해열제는 열을 내린다. 소염진통제는 몸살 기운을 완화시킨다.
약이 제 기능을 하는 몸으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어떤 느낌이었지? 증상이 명확한 목감기 같은 것은 약을 먹으면 효과가 나타났다. 나도 분명히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편도가 부은 건 약을 먹으면 금방 가라앉는다.
그럼 약도 휴식도 뭣도 아무 소용없는 이런 미스터리 한 몸살 시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몸이 좀 쉬라는 걸 거야’라며 몸의 소리를 알아듣는 도인 같은 소리를 하면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것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도 낫지 않으면 마치 배움이 부족했다는 듯 ‘아직 쉼이 충분하지 않은 게야’ 같은 말을 하면서 또 더 쉬는 것이다.
내 몸과 형이상학적인 대화를 하고 싶진 않다. 내가 무슨 도인도 아닌데 독심술 같은 것으로 몸의 소리를 들으려 애써야 하는 것도 싫다. 그냥 약 먹으면 증상 완화되고, 그냥 그런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는 뻔한 몸이 될 순 없겠니?
아무 이상도 없는데 나는 아플 때 병원에선 섬유근육통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난 그 이름이 싫다. ‘아파? 근데 넌 이상이 없어. 우린 너에게 해줄 게 아무것도 없어.’라는 소리니까. ‘우리가 해줄 건 아무것도 없다’가 결론인 병명은 대체 누가 만든 걸까. 거지 같다.
몸살 시즌을 지나고 있다. 일주일 이상 길어지는 건 싫다. 방법이 없어도 일주일 정도만 답답하게 살면 끝이 있더라는 데이터를 남기고 싶다. 아무도 나의 이런 몸에 대해 깊고 면밀한 탐구를 하지 않을 테니, 나라도 유의미한 관찰과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 내가 나를 탐구하여 미래에 비슷한 증상이 있을 때 나를 안심시킬 수 있는 사례를 수집해야 한다.
이 몸은 내 것이고, 모두가 모르겠다고 뒷걸음질 쳐도 나는 갈 수 없다. 아파도 해줄 게 아무것도 없다고 도망가진 않을 거다.
매일 밤 다음 날 눈을 뜨면 몸이 내 정성에 탄복하여 멀쩡해져 있길 바라며 잠에 든다. 내일은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