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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Mar 29. 2022

가방이 필요해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면서 생일 선물로 가방을 두 개나 사고 받았다. 둘 다 아직 밖에 들고나간 적은 없다. 집에서 글을 쓰는 것만도 버거우면서 요샌 노트북이 들어가는 가방을 고르고 있다. 그냥 외출도 어려운데 무거운 짐을 들고나가서 글까지 쓰는 일정이라니 내 생각은 대체 얼마나 앞서 있는 거지? 그래도 뒤를 향한 것이 아니고 앞을 향한 것이니 언젠간 결국 다 쓸모가 있어질 거라 생각하며 소비를 합리화해본다.
 

가방을 자꾸 고르게 되는 것은, 단지 가방을 사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고 싶다는 것이다. 기어 다니는 산책 말고, 병원 가는 거 말고, 그냥 자발적인 즐거운 외출을 하고 싶다는 소리다. 가방은, 바깥에 나가고 싶다는 내 욕구의 커다란 외침이다.


생일은 3월 초였고, 가방은 2월부터 고르기 시작했다. 사실 작년부터 봐 둔 것이 이미 하나 있어 하나는 어렵지 않게 샀고, 나머지 하나는 세상 온갖 가방을 구경하다가 생일이 오기 직전에 골랐다. 링크를 오빠에게 보내 선물을 골랐으니 사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혹시나 맘에 안 들어서 반품할 수도 있으니 돈으로 달라고 말했다. (반품한다고 돈을 돌려주는 일은 없다. 원래 동생은 그런 존재다.) 다행히 가방이 마음에 쏙 들어 나의 가방 칸 한 부분을 떡 하니 차지하게 됐다. 그렇게 내가 산 가방 하나와 선물로 받은 가방까지 새 가방 두 개를 얻었다. 베란다에 두고 냄새도 빼고, 탈취제를 넣어놓기도 했다. 2,3월 중 외식이라도 한 번쯤은 할 수 있을까 싶어 가방 안의 종이 뭉텅이를 모두 빼놓은 상태였는데 3월이 되어서도 편두통이 잦아들 기세가 보이지 않아 개시도 하지 못한 채 가방들을 가만히 더스트백 안에 넣었다. 가방을 사용하게 되기 전까지 먼지가 너무 많이 쌓일 것 같았다.
 

그렇게 있는 가방도 다 천으로 싸매 놓은 마당에 나는 주말 아침부터 노트북이 들어갈 가방을 고르고 있다. 노트북을 들고나가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 그게 언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봄은 아닌 걸 안다. 여름도 아닌 것 같다. 가을은 확실친 않지만 그럴 체력이 있다면 산책을 20분 더 하고 글은 집에서 쓰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가을쯤엔 산책과 글쓰기를 하루에 다 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 같은데 그럴 때 어쭙잖게 카페에서 글쓰기 같은 것을 시도해봤다가 이도 저도 안 되고 다시 후퇴해버릴 것만 같다. 어찌 됐든 무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겨울. 겨울에 내가 집 밖으로 나갈까? 안 나간다. 나갈 리가 없다. 그러면 내가 노트북을 들고나가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건 내년 봄. 가방을 고를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스크린 타임을 체크하며 초조하게 가방을 검색하는 일은 그만해도 될 것 같다.


생일 선물로 가방을 사달라며 쇼핑몰 링크를 보냈을 때 오빠가 말했다.

- 이제 좀 돌아다닐 만 한가 보네.

내가 그런 상태였으면 참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아니었다.

- 돌아다닐 만해서 사려는 게 아니라 가방이 있어야 돌아다니지.

 

언제 돌아다닐지는 아직   없다. 일단 준비물을 챙긴다. 가벼운 외출을 위한 작은 크로스백, 짐이 조금  생길 것을 대비한(주로 병원) 조금  보스턴백을 준비했다. 일단 가방이 있어야 돌아다닐  해질 어떤 날에 망설임 없이 가방을 들고나갈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트북이 들어가는 가방은 지금부터 찾아도 괜찮을  같다. 가방을 고르는 것은 왠지 모르게 항상 즐겁다. 그걸 들고 밖으로 나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게 돼서 일까. 가방은 언제나 멋지고 상상  가방을   모습은  근사해 보인다.


미래를 상상하며 긍정을 품게 되는 내 마음이 조금 대견하다. 가방을 다 방구석에만 처박아 놨다고 우울해하지 않고 또 다른 가방을 향해 돌진하다니, 그래도 계속 앞으로만 가려하다니 안심이 된다. 내가 나를 조금은 믿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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