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에 나가지도 못하면서 생일 선물로 가방을 두 개나 사고 받았다. 둘 다 아직 밖에 들고나간 적은 없다. 집에서 글을 쓰는 것만도 버거우면서 요샌 노트북이 들어가는 가방을 고르고 있다. 그냥 외출도 어려운데 무거운 짐을 들고나가서 글까지 쓰는 일정이라니 내 생각은 대체 얼마나 앞서 있는 거지? 그래도 뒤를 향한 것이 아니고 앞을 향한 것이니 언젠간 결국 다 쓸모가 있어질 거라 생각하며 소비를 합리화해본다.
가방을 자꾸 고르게 되는 것은, 단지 가방을 사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고 싶다는 것이다. 기어 다니는 산책 말고, 병원 가는 거 말고, 그냥 자발적인 즐거운 외출을 하고 싶다는 소리다. 가방은, 바깥에 나가고 싶다는 내 욕구의 커다란 외침이다.
생일은 3월 초였고, 가방은 2월부터 고르기 시작했다. 사실 작년부터 봐 둔 것이 이미 하나 있어 하나는 어렵지 않게 샀고, 나머지 하나는 세상 온갖 가방을 구경하다가 생일이 오기 직전에 골랐다. 링크를 오빠에게 보내 선물을 골랐으니 사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혹시나 맘에 안 들어서 반품할 수도 있으니 돈으로 달라고 말했다. (반품한다고 돈을 돌려주는 일은 없다. 원래 동생은 그런 존재다.) 다행히 가방이 마음에 쏙 들어 나의 가방 칸 한 부분을 떡 하니 차지하게 됐다. 그렇게 내가 산 가방 하나와 선물로 받은 가방까지 새 가방 두 개를 얻었다. 베란다에 두고 냄새도 빼고, 탈취제를 넣어놓기도 했다. 2,3월 중 외식이라도 한 번쯤은 할 수 있을까 싶어 가방 안의 종이 뭉텅이를 모두 빼놓은 상태였는데 3월이 되어서도 편두통이 잦아들 기세가 보이지 않아 개시도 하지 못한 채 가방들을 가만히 더스트백 안에 넣었다. 가방을 사용하게 되기 전까지 먼지가 너무 많이 쌓일 것 같았다.
그렇게 있는 가방도 다 천으로 싸매 놓은 마당에 나는 주말 아침부터 노트북이 들어갈 가방을 고르고 있다. 노트북을 들고나가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 그게 언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봄은 아닌 걸 안다. 여름도 아닌 것 같다. 가을은 확실친 않지만 그럴 체력이 있다면 산책을 20분 더 하고 글은 집에서 쓰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가을쯤엔 산책과 글쓰기를 하루에 다 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 같은데 그럴 때 어쭙잖게 카페에서 글쓰기 같은 것을 시도해봤다가 이도 저도 안 되고 다시 후퇴해버릴 것만 같다. 어찌 됐든 무리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면 겨울. 겨울에 내가 집 밖으로 나갈까? 안 나간다. 나갈 리가 없다. 그러면 내가 노트북을 들고나가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건 내년 봄. 가방을 고를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스크린 타임을 체크하며 초조하게 가방을 검색하는 일은 그만해도 될 것 같다.
생일 선물로 가방을 사달라며 쇼핑몰 링크를 보냈을 때 오빠가 말했다.
- 이제 좀 돌아다닐 만 한가 보네.
내가 그런 상태였으면 참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아니었다.
- 돌아다닐 만해서 사려는 게 아니라 가방이 있어야 돌아다니지.
언제 돌아다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일단 준비물을 챙긴다. 가벼운 외출을 위한 작은 크로스백, 짐이 조금 더 생길 것을 대비한(주로 병원) 조금 큰 보스턴백을 준비했다. 일단 가방이 있어야 돌아다닐 만 해질 어떤 날에 망설임 없이 가방을 들고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트북이 들어가는 가방은 지금부터 찾아도 괜찮을 것 같다. 가방을 고르는 것은 왠지 모르게 항상 즐겁다. 그걸 들고 밖으로 나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게 돼서 일까. 가방은 언제나 멋지고 상상 속 가방을 든 내 모습은 꽤 근사해 보인다.
미래를 상상하며 긍정을 품게 되는 내 마음이 조금 대견하다. 가방을 다 방구석에만 처박아 놨다고 우울해하지 않고 또 다른 가방을 향해 돌진하다니, 그래도 계속 앞으로만 가려하다니 안심이 된다. 내가 나를 조금은 믿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