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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May 07. 2022

형편없는 초고와 헤매는 글쓰기

요새 쓰는 글은  파편이다. 제대로 완성한  편이 하나도 없다. 이거 쓰다 저거 쓰고 다시 이거 쓰고 그런다.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한단 소리다. 어느 것도 글이 쭉쭉  나가지 않는단 소리이기도 하다.   되니까 다른 주제를 쓴다. 그것도  되니까  다른 주제를 들고  쓴다. 그러다 보니 여놓은 글만 많아진다.  하나 완성도 못하고 정신만 산만해진다. 난장판이다.  


현 시국을 타파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노트북을 끈다. 노트를 치운다. 1번 방으로 돌아온다.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 을 펼친다. 수없이 붙여진 인덱스 중에서 나에게 필요한 딱 그 문장을 찾아 읽는다.


지금 단계에서는  정도면 충분해.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기만 하면 . 하지만 여기서  짧은   편을 마무리하는 거야, 알았지?


짧은 글 한 편, 짧은 글 한 편.


용기를 품기 위해 오늘 오후 책상 앞에 추가한 메모도 있다.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면 좋겠다.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핑계라면 수 십 개도 들 수 있다. 요새 기분이 좋지 않고 이유 없이 졸려서 집중하기 힘들고 어제저녁의 두통이 조금 남아있었다. 목차를 새로 쓰고선 내용이 중첩될 수 있는 세 꼭지를 발견했는데 그렇다고 하나로 합칠 수는 없다. 적절하게 분배하여 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적절함의 기준을 모르겠다. 이미 써넣은 글이나 일기를 글 하나에 녹여내는 것도 쉽지가 않다. 조잡해지는 것 같다. 글을 시간순으로 써야 할지 지금 잡히는 대로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순서 없이 쓰다가 내용이 겹치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있다.


다 차치하고 이 글이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이제 놀랍지도 않을 정도다. 내가 진짜로 책을 내고 단 한 명에게라도 내 글이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실제로 듣기 전까진 난 계속 내 글의 쓸모에 대해 확신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채로 계속 쓸 것 같다. 다 쓰지 않으면 쓸모의 여부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이 나아지곤 있지만 아직 충분히 나은 것은 아니라서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마음이 더 조급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 동안 뭔가를 어느 정도는 하고 싶다. 하지만 지난 며칠간 나는 겨우 나의 지난 일기장을 다시 찾아 읽거나, 작년에 써놓은 글을 타이핑하고 뒷부분을 다 지우고, 의식의 흐름으로 아무 말이나 적고, 노트를 펼쳐선 또 다른 주제에 대해 끄적이는 것밖에 하지 않았다. 정확히 뭔가를 어느 정도 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냥 많은 종이 더미 옆에서 시간을 보냈다.


『쓰기의 감각』 을 뒤적이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걸음 나아가, 우리가 무엇을 써야 할지를 깨닫기 위해서도 실패는 필수다.


며칠간 썼던 글의 조각들이  형편없이 여겨진 것을 생각하면 나는 내가 써야  것이 그것들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게   같다. 필수적인 실패였다. 내가 건드린 모든 주제에 대해 다른 언어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지나간  지나간 대로 그냥 버리자. 형편없는 초고가 지나가야 읽을  있는 글이 나오게 된다고도 말했잖아? ( 라모트) 나에게 형편없는 초고가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간다. 네가 남나 내가 남나 결국 내가 남겠지.


다시 아침이 밝았고,   있는 일을 하자. 일단 짧은   편을 완성하는 거야. 그게 오늘은 아닐지라도, 매일 아침   있는 일을 하자. 그거면 된다.



(역설적으로 이 짧은 글 한 편은 완성했다. 근데 써야 할 글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숨 들이 마시고 내쉬기. 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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