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쓰기와 조금 거리를 두는 중이다. 왜냐하면 글쓰기가 나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자제하지 못하고 몸이 아플 때까지 글을 쓰는 바람에 글쓰기를 내 인생의 문젯거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의 내가 무엇을 했냐 하면 어떻게 글쓰기와 거리를 둘 것인가 하는 글을 썼다. 나는 글을 쓰고 싶고, 요새는 글을 쓰는 게 심지어 재밌기도 하고, 심심할 때는 소설을 쓰는 말도 안 되는 상태에 이르렀는데 글을 쓰며 마음이 행복해질수록 몸은 불행해진다. 요새 나의 고민은 어떻게 글을 적당히만 쓰는가 하는 것이다.
아예 안 쓰는 것에 대해 당연히 생각해보았지만 불가능하다. 명시적으로 절필을 선언했던 지난 며칠 동안 나는 본격적으로 글이라 불리는 걸 쓰진 않았지만 글처럼 보이지 않게 메모를 글처럼 쓰는 걸 반복했다. 어제는 일기를 쓰는 듯 세 줄을 쓰다가 소설로 넘어가기도 했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만들어 분출해내는 것이 나의 본능인 것 같아 절필 같은 단어는 인생에서 지우기로 했다. 지키지도 못할 말을 굳이 꺼낼 필요는 없다. 주워 담기 귀찮기만 하다.
그렇다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적당히만 글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적당한 양이란 어느 정도인가? 그 양이 날마다 같을 수가 있나? 몸 컨디션이 날마다 다르듯 내가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도 날마다 다르다. 작업의 리듬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는 어느 작가의 글을 읽고는 나도 그러한 리듬을 가져볼까 생각해보았지만 지금의 나는 바이오 리듬조차 제멋대로다. 그저께는 새벽 세 시에 깨서 다시 잠들지 못했는데, 어제는 밤 열 시부터 오늘 아침 열한 시까지 딱 한 번 깬 것을 제외하고는 쭉 숙면을 취한 식이다. 이 정도로 생활리듬이 제멋대로면 일정한 시간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리듬 따위는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작업의 리듬 같은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몸 상태는 날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A4 열 장의 글도 쓸 수 있겠지만, 어떤 날은 겨우 한 페이지를 쓰기도 힘들지도 모른다. 나는 그동안 내 몸 상태를 눈치 보듯 살피며 좀 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엔 조금 더 썼다. 그러다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가 돼서야 멈추는 걸 반복했다. 도저히 그전에 멈추는 걸 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기준을 세우기로 한다. 몸 상태에 따라, 기분에 따라 작업량을 늘리거나 줄이지 말고 하루에 딱 두 시간만 쓰는 것이다. 오전 한 시간, 오후 한 시간. 사실 나에겐 오전이 없는 경우도 많으니 오후 한 시간, 저녁 한 시간이어도 될 것 같다. 모래시계를 사겠다고 하니 B쌤은 다 핑계라고 했다. 휴대폰 타이머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쓰면서 타이머를 켜지 않았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마다 타이머를 켜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사실 글을 쓰는 시간을 정해 놓는 것 자체가 나는 맘에 들지 않는다. 영감이 떠오르면 쭉 써야 하지 않나? 그럴 때 정해 놓은 시간이 지났다고 끊을 순 없지 않나? 그리고 시간을 정해 놓았는데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날들도 있을 수 있다. 그동안 거의 대부분 계획보단 즉흥적인 영감에 의해 글을 썼기에 글을 쓰는 시간을 정해 놓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계속하려면 어쩔 수 없다.
오늘 운동을 하러 갔다 들었던 무수한 잔소리를 기억하자. 뭐든지 덜 하면서 살라는 그의 말을 기억하자. 무리하지 말고 살아라, 충분히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살아라, 앞으로 쭉 그렇게 살아라. 뭔가 할 만큼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다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어정쩡한 듯 애매한 상태에서 항상 끝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계속할 수 있다.
글을 내 멋대로 쓰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내킬 때 자유롭게 언제고 어떤 양이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잠시 타오르다 사라져 버릴 불꽃이 아니라 언제든 은은한 빛을 낼 수 있는 주광색 전구이고 싶다. 그렇게 오래 글을 쓰고 싶다.
오늘의 다짐으로 나는 나를 바꿀 수 있을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절필하려던 나는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두 시간을 얻었다. 시간을 정해 놓고 글을 쓰다니 이 글을 다 써가는 이 순간에도 그 개념이 다소 생소하다. 머릿속에서 문장 하나가 시작되어 그 문장을 받아 적다가 결국 글 하나를 완성하곤 했던 나는 내가 도저히 그렇게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머릿속에 문장이 떠올라야 책상 앞에 앉았는데, 이젠 어떻게 되는 거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내 몸을 지켜야 글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몸을 지키며 글을 써야 한다. 하루에 두 시간을 넘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글쓰기와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갑자기 떠오르는 문장들은? 메모는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지금도 도저히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자.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두 시간을 얻었지 않은가. 내일 첫 한 시간에는 뭘 하지? 그 두근거림으로 밤새 글의 소재를 생각할 수도 있다. 뭐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일단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