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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Jun 23. 2022

내가 유일하게 존경했던 어른이 돌아가셨다

내가 유일하게 존경했던 어른이 돌아가셨다.

사회에 나와 십삼 년을 일했지만 내가 존경한 분은 그분뿐이었다.


십 년 전 내가 우울증으로 휴직을 하고 홍대 앞에서 음악을 하고 있을 때, 진단서를 제출하기 위해 학교에 갔다. 교감선생님께선 내가 가져간 진단서를 슬쩍 보시곤 단 한 가지만 물으셨다.

‘임쌤, 행복해요?’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됐어요.’

그 미소로 나는 오랫동안 웃으며 노래할 수 있었다.


같이 근무한 지 4년이 되던 해 여름, 교감선생님은 다른 학교 교장선생님으로 발령이 나셨다. 나는 그를 유독 따랐기 때문에 갑자기 한 해의 중간에 그가 떠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그의 안녕을 기원하지만 잊지는 말아달라는 마음을 담아 노래를 썼다. 이임식 전 날까지 만들고 고쳤고, 영상으로 찍어 이임식 날 강당에서 틀었다.


보내드리지만 가지 마오

보내드리지만 잊지 마오


누군가를 위해 노래를 쓴 일은 손에 꼽는다. 마음이 거대하게 움직여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는 내가 존경했던 유일한 어른이었다.


그는 나의 결혼식에 주례를 해주셨다. 결혼식 전 인사드리기 위해 남편과 함께 만난 식사 자리에서 그가 내게 물으셨다.

‘임쌤, 왜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음, 이 사람이면 평생을 같이 살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또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럼 됐어요.’


교장선생님은 결혼식 숙제로 나에겐 영시를, 남편에겐 그 시의 해석본을 외워오게 하셨다. 결혼식 당일, 짧게 끝내겠다는 말과 함께 시작한 주례사는 결론에 다다른 것 같았던 때 그것이 그저 발단의 결론에 불과하다는 정체를 드러내며 하객들의 집중력을 조금 떨어트렸다. 멀리서 온 고향 친구도 두고두고 그날의 주례사에 대해 얘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그저 나의 앞길을 축하해 줄 마음이 컸을 뿐이었다. 결혼식 후 A4용지에 인쇄된 주례사를 보게 됐다. 두 페이지 정도 빽빽한 양이었는데, 놀라웠던 것은 그가 주례를 하며 아래를 보신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그 긴 주례사를 다 외우셨을까. 어떻게 그런 마음을 나눠주실 수 있었을까. 그런 마음은 십 분 정도는 들어줘야 하는 법이다. 따뜻함이 넘쳐흘러난 주례사였다.


나는 결혼 전부터 아팠고, 결혼 후에도 계속 아팠다. 내 상태가 좋지 않아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일이 줄었다. 잘 못 지낸다는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잘 지내시냐는 질문을 먼저 꺼내는 것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과 연락을 끊고 주로 집에서 혼자 아팠다.




그의 췌장암을 발견한 것은 작년 10월이라고 했다.


나는 작년 3월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에게 연락하지 않은 것은, 그만두고도 아직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몸이 아팠고 글을 쓰고 있노라고, 학교는 그만두었지만 언젠가는 꼭 작가가 되겠노라고 그에게 말했다면 그가 얼마나 나를 응원해 주었을지 감히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만약 책을 내게 된다면 가장 진심으로 축하해 줄 어른이 그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는 조금 더 빨리 말했어야 했다.

내가 사실 몸이 아프다고 그래서 학교를 그만뒀다고 그리고 글을 쓴다고 그래서 언젠간 꼭 책을 쓸 것이라고 그리고 그 책을 꼭 그에게 선물로 드릴 거라는 말을 했어야 했다.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고 아무것도 나아가지 않은 상태로는 연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몸이 조금 나아지면, 내가 뭔가를 할 수 있게 되면, 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늘 내가 가장 존경하던 어른이 돌아가셨다.








교무실 그의 책상에는 안나 카레리나가 있었다.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들에 대해 이야기했던 날들이 기억에 선하다. 결재를 받으러 가면 자리에 계시질 않고 학교의 어느 선선한 곳에 의자를 두고 책을 읽고 계시던 모습도.


7년 전 내가 그를 다른 학교로 보내며 썼던 노래는 마치 내가 그를 다른 곳으로 떠나보내는 마음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나는 이런 영원한 이별까지 예상한 적이 없다.  


가지 마오 - written in 2015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나요
그때 나는 많이 나는 아팠고
그대는 내게 웃어주었죠

무너질 것 같을 때마다
그대의 말이 가슴에 닿아
이렇게 난 울지 않고 노래하고 있어요

만남은 이별의 다른 이름임을 알고 있지만
그대 떠나간다니

그대의 웃음과 그대의 이야길 기억해
따뜻했던 그 맘 그 눈빛까지도 고마웠어요

언젠간 그대 날 떠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말 떠나간다니

내가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요
그대를 어떻게 떠나보낼 수 있을까

보내드리지만 가지 마오
보내드리지만 잊지 마오


이번에는 영영 가셨다. 잊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렇게 말할 그가 이제 세상에 없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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