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을 운영하며 매일같이 되풀이하는 기이한 질문이 하나 있다.
"분명 충분히 준비해 두었고, 쉼 없이 세탁기를 돌리고 있는데, 왜 수건은 항상 부족한 걸까."
수건은 숙소에서 가장 작고 흔한 물건이다. 침구 한 채에 비하면 값도 저렴하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수건을 참으로 쉽게 대한다. 누군가는 머리를 말리고 얼굴을 닦지만, 또 누군가는 신발을 닦고 바닥을 훔친다. 그렇게 수건은 도대체 어디에 쓰였는지 알 수 없는 처참한 상태로 돌아오거나, 심지어 영영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원칙적으로는 훼손된 비품에 대해 게스트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규정에도 명시되어 있고 안내도 충분히 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하려는 것은 돈 이야기가 아니다. 나를 정말로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수건을 '휴지처럼 쓰고 버려도 되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그 가벼운 마음들이다.
공유숙박을 하던 시절의 수건은 지금과 달랐다. 그때의 수건에는 사람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적당한 물기와 조심스럽게 접힌 모서리, 다시 세탁하면 충분히 보드라워질 수 있는 선량한 상태. 수건을 폐기하는 일은 아주 '가끔'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모텔이라는 거친 현장에서 수건은 '물건'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로 돌아온다. 세탁실에서 축축한 수건을 하나씩 펼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손이 멈춘다. 찢어진 가장자리와 지워지지 않는 검은 얼룩, 딱딱하게 말라붙은 자국들.
이 수건은 누군가의 젖은 몸을 감싸주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배설된 분노를 묵묵히 받아냈을까.
정말로 속상한 것은 사라진 수량이나 교체 비용이 아니다. 그 수건이 소모되는 '방식'이다. 조심성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마치 이 공간이 누군가의 지독한 관리와 비용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은 듯한 무심함. 그 무심함이 운영자인 나의 마음을 가장 먼저 마모시킨다.
하루의 끝, 산더미처럼 쌓인 수건을 접으며 나는 자주 멈춰 선다. 왜 이 수건들은 이토록 쉽게 버려져야 했을까. 왜 나는 이 무수한 타인의 흔적을 홀로 묵묵히 정리하고 있어야 할까. 질문은 결국 물건을 넘어 사람에게 닿는다. 이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손길과 시간과 신경들. 그 노고를 아무도 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외롭게 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엄격한 규칙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 모든 경우에 기계적으로 비용을 청구하지는 않는다. 그날의 분위기, 게스트의 의도, 묻어있는 흔적의 결을 살핀다. 그래서 때로는 더 아프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그 가벼운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세탁실의 내 어깨를 짓누르는 안타까움이 되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수건은 가장 솔직한 기록이다. 이불은 커다란 사건이 되어 눈에 띄고, 온라인 후기는 때로 의도적으로 왜곡되지만, 수건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쓰였는지, 어떤 태도로 이 공간에 머물렀는지, 그 하루의 결을 고스란히 안고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수건을 개며 그 너머의 사람을 본다.
수건은 왜 항상 부족해지는가.
그 질문의 답은 세탁실 건조기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사람이 공간을 대하는 마음, 그 보이지 않는 태도 속에 숨겨져 있다. 나는 오늘도 묵묵히 수건을 접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닳아가는 나의 마음을 가만히 다독여 본다.